(1)책을 읽지 않을 권리 (2)건너뛰며 읽을 권리 (3)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책을 다시 읽을 권리 (5)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보바리즘을 누릴 권리 (7)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읽고 나서 아무 말도 않을 권리.
이 신성한(?) 10가지 권리는 프랑스의 교사이자 작가인 다니엘 뻬냑이 그의 책 ‘소설처럼’에서 천명한 독자의 권리이다. 독자, 특히 그 독자가 학생이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할 독자의 권리를 학급 도서 100여권의 내지에 다 붙여 놓았다. 비교적 도서관 시설이 좋은 우리학교에서 굳이 학급문고를 만들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전임 학교에서 4년 근무를 마치고 새 학교로 둥지를 틀어 1학년 담임을 맡게 됐다. 3월 어느 날, 전 학교에서 역시 1학년 담임을 하며 나머지 2년을 지켜봐온 한 제자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〇〇예요. 새 학교로 옮기셨다고 들었어요. 선생님과 함께 한 동아리 트루바도르(troubadour)가 지금 제 공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그때 읽은 책과 체험 덕분으로 이렇게 대학교 생활도 잘하고 있답니다. 동아리 이끌어주셔서 고맙고 군대 가기 전에 한번 찾아뵐게요”라는 내용이었다.
내 기억 속의 그 아이는 할아버지와의 가슴 시린 추억담을 연필로 꾹꾹 눌러 적어 나를 잔잔히 감동시켰었던 트루바도르(프랑스어로 ‘음유시인’이란 뜻)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부산의 한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며 동아리 활동으로는 연극영화를 하면서 학생회까지 맡아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우리가 약 2년을 함께했던 독서토론동아리가 생각났다. 1학년 10개 반에서 희망자 11명과 함께한 행복했던 책읽기와 토론과 글쓰기, 그리고 생생한 체험들. 그들은 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한 인문계 남고에서 삶을 노래하고 사랑했던 트루바도르였다. 그 아이의 문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새 학교 생활을 평이하게 했을 지도 모른다.
편안하게 생활하고 싶은 그런 유혹이 왜 없었겠는가? 그때가 2009년, 올해가 2013년이니 햇수로도 족히 4년이 넘었다. 한 배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도 세대차이가 난다는 이 아이들에게 4년 전의 경험을 재구성하기에는 ‘좀 애매한’ 구석도 있었고, 내 코도 석 자이고(나에겐 어린 아이가 세 명이나 된다), 그런 열정을 갖기에는 힘에도 부칠 나이니 말이다.
내가 새로 맡은 이 아이들은 처음에는 순한 양의 모습을 하다가 3월 초의 긴장이 지나자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학교 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하루일과 앞에서 불평하고, 첫 모의고사를 치고는 그 결과에 좌절하고, 아침 등교해서 엎어져 자거나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학생 실태조사를 하고, 개별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이들이 의외로 꿈이 없다는 것이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 누굴 닮고 싶은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느냐는 질문에 시큰둥하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롤 모델도 없고, 본인이 뭘 잘 하는지도 잘 모른다는 아이들에게 줄 최초의 그리고 최종의 선물로 ‘책’을 선택했다. ‘그래, 다시 이 아이들이 나와 함께 책을 읽는 거야.’ 그러나 어떻게 책을 읽히지? 어떻게 책을 마련하지? 무슨 책을 사야할까? 행복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학급문고를 마련했다. 내키면 바로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도록. 학급문고에 필요한 책은 기부하고 싶은 학생이 내도록 했다. 물론 우리 반의 고촌 장학생과 삼성꿈나무장학생 추천서를 써주면서 그 아이들과 약속을 했었다. 장학생이 되면 장학금의 일부를 학급도서 구비에 기부하자고. 그 아이들과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했고 책을 기부해줬다. 물론 나도 힘을 보탰다. 지금 우리 반 학급문고 책은 진로, 독서, 문학, 과학, 예술 등 100여 권이다.
아침 자습시간에 나는 아이들과 책을 읽는다. ‘책을 읽어라’는 것은 명령할 수 없는 동사라고 한다. 내가 먼저 읽는 수밖에 없다. 그 파급효과는 적지 않았다. 우선, 스마트폰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알아서 책을 빌려가서 책을 읽는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아이들은 진로 관련 책을, 과학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과학 책을, 성에 차지 않으면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그날그날 읽은 책은, 학교에서 마련해준 독서노트에 한 두 줄 씩 기록하고, 약간의 시간을 두고 독서지원종합시스템에 등재한다.
지금까지 우리 반 아이들은 많게는 스무 권, 적게는 열 권 정도의 독후감을 기록하고 있다. 정량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학생들의 독후감을 출력해 읽고 짬을 내 수업시간에 읽어주거나 발표를 시키는데, 단순한 줄거리 요약을 지나 삶의 변화를 가져온 것을 많이 보았다. 책을 통해 어느새 아이들의 생각은 여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또 책에서 얻은 간접경험을 실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짬짬이 체험활동을 많이 했다. 특히 책 대신 사람을 빌리고, 글을 읽는 대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리빙 라이브러리’는 학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학기에는 학교 선생님 8분, 2학기에는 외부 재능기부자 6분과 함께했다.
이밖에도 부산영어방송국의 게릴라 콘서트(영어방송국과 나의 사전 준비로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진행된 실생활 중심의 영어 토크쇼),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 탐방에서부터, 근대역사관, 40계단, 인쇄골목, 백년어서원에서의 진로 멘토링 체험 프로그램, 영어도서관견학과 영어도서관의 정기적 이용, 인디고서원 방문, 부산고등법원 체험과 모의재판 시연, 부산 진로진학 지원센터에서의 리더십 함양 프로그램 등 이 모든 것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탐색해 나갔다.
이제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여러 방법으로 나누고 있다. 그들이 올해 손 글씨로 적어 보낸 편지만 해도 제법 많다. 돌을 깨면서 가장 역할을 하는 네팔의 아이 비샬에게 희망과 용기를 적어 보낸 편지, 부모님과 은사, 친구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 30년 후 자신의 아들딸에게 꿈을 적어 보내는 아름다운 편지 등. 여러 편지글에서 그들의 꿈이 영글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기특한 것은 자신의 꿈에 맞춰 1인 1나눔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 가을이 지나면, 학급 뮤지컬이 첫 선을 보인다. 학예제 이후, 고아원과 양로원 등지를 돌며 자선공연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한 해 이야기는 곧 학급문집으로 제작될 것이다.
한 학생이 리빙 라이브러리에서 읽고 싶은 사람 책으로 나를 대출했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첫 타임에서 대출자 5명 중 한 명이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 행사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주려고 하십니까?” 나의 답은 간결했다.
“너희들에게 스펙보다 중요한 스토리를 같이 만들어가고 싶어. 학년말이 되면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게 될 거야.”
리빙 라이브러리 활동 시에는 아이들에게 KWL(Know-Want-Learned) 차트를 나눠준다. 본인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알고 싶은 것, 배운 것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든 활동지다. 여기에는 사람 책 별명 정하기 코너가 있는데 내 별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책’ 이었다. 이 별명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
아이들의 변화를 조금씩 느낀다. 물론, 아이들은 학업으로 여전히 피곤하다. 잠에 취해서 정신줄을 놓기도 한다. 야자시간에 코를 골고, 침을 흘리며 곤한 잠에 빠져있는 아이도 있다. 남자아이들, 수다도 심하다. 아직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중학교 때 책과 담쌓았다던 녀석이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빼들고 읽어낸다. 요리사가 꿈인 아이다. 뭐가 될지 고민 중인 한 아이는 ‘진로독서’를 읽고 있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아이는 얼마 전 들여놓은 ‘10월의 하늘’을 읽는다. 그들에게 하늘이 열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