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일을 맞아 친구와 식사 약속을 잡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는 예쁘게 포장된 상자에서 종을 꺼내 내게 건네었다.
그러면서 종에 담긴 사연을 들려주었다. 친구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교사의 꿈을 아들이 이뤄주기를 기대하였고, 아들이 교사가 되면 선물하려고 어렵게 구해 가족들 모르게 소중히 간직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기대와 달리 회사원이 됐다며 이제는 자기에게는 의미가 없는 물건이 되었으니 교사인 내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교사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서운해 하는 친구에게 "知足常樂(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다-도덕경)이라 하였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자식의 삶에 굴레를 씌우게 되어 뜻을 펼치지 못한다. 부모는 자식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껴야한다" 고 위로의 말을 해줬다.
집으로 오는 길에 철부지 초등교 시절이 어렴풋이 스쳐 종을 들고 뒷산으로 올랐다. 그리곤 동심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알려주신 종소리의 신호를 생각하며 살살 종을 쳤다.
땡-땡-땡-땡-땡(빨리 모여라-운동장 집합), 땡-땡-땡-땡(들어가라-수업 시작), 땡-땡-땡(나가라-수업 끝). 이번에는 좀 더 세게 쳤다. 순간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초등학교 운동장이 펼쳐지고, 코흘리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다녔다. 세월은 철부지 아이들을 머리카락 희끗희끗한 중년으로 바꾸어 놓았고, 학교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전자시계에 맞춰진 멜로디로 시작과 끝을 알린다.
종은 깨우침의 의미이며, 치는 힘만큼 소리를 낸다는 것을 느꼈다. 날마다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큰 결과를 얻으려한 것은 아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가 아니 몸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이 깨우침인데 무심하게 지내온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본다. 깊어가는 가을에 친구가 내게 선물한 것은 학교 종이 아니라 열정과 깨우침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