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교원단체가 교육부의 12년 학제 추진에 대해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필리핀 ‘참여하는 교사연대(ACT)’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의무 교육 연한을 2년 더 늘리는 ‘K(유치원·Kindergarten) to 12’ 정책이 교육 민영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교육 기간 연장에 따라 늘어나는 학생 수를 감당할 여건은 마련하지 않고 민영 교육기관에 다니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 교육부는 지난 2011년 12년제 의무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존 10년제 학제(초등 6년, 고교 4년)를 12년제(초등 6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년)로 바꾼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2년 6월 신학기부터 6년제 중등교육 과정이 적용돼 올해 처음으로 고교 2년 과정에 학생들이 입학하게 된다.
교육부는 12년 학제를 통해 세계적인 기준에 맞추겠다는 목표다. 10년제 교육을 받은 필리핀 학생이 다른 국가로 유학을 준비할 경우, 부족한 2년 과정을 메우기 위해 별도로 돈을 들여 교육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다. 또한 2년의 고교 의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학업 수준과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도 반영됐다.
그러나 12년 학제를 도입하기 위한 여건은 마련하지 못해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7748개 고교 중 5800여 개만이 2년 학년이 더 늘어난 학생을 수용할 교실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오는 6월 중학생 50만 명을 사기업 업체가 만든 민영 교육기관(Affordable Private Education Center·APEC)에 진학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교원들은 교육부가 ‘K to 12’ 도입을 통해 민영 교육기관들의 몸집 불리기에 동참하고 있다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진학을 유도하고 있는 민영 교육기관은 영국 피어슨 그룹(교육·언론 기업)과 필리핀 아얄라 그룹(부동산 개발사)이 합작해 개설한 학원 형태의 시설이다. 현재 필리핀 내 23개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벤자민 발부에나 ACT회장은 “학생 교육을 위한 공적자금을 민간 기업의 수익 창출을 위해 몰아주는 꼴”이라며 “학부모들도 정부의 지원금만으로는 이 학교 입학금을 충당할 수 없어 추가 비용이 든다고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교원들은 이 정책이 오히려 교육의 질을 저하시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영 교육기관들이 학교 용도에 맞는 건물을 신축하지 않고 기존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체육관이나 과학실, 도서관 등 교육활동에 필요한 시설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기관 교사의 70%가 교원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채 일반 공립학교 교사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영 교육기관이 교육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고 수익 창출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발부에나 ACT회장은 “다른 교육단체에서 법원에 12학년제 시행 중단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으나 묵살됐다”며 “무조건 외국 방식대로 12학년제를 시행하기보다는 필리핀의 여건에 맞게 기존의 K to 10프로그램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