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등장한 시의 새 장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나 사물, 풍경 등을 디지털카메라에 담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영감을 5행 이내의 짧은 글로 표현해 작품을 완성한다. 사진(영상)과 짧은 문장으로 소통하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세대는 물론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김왕노 경기 율목초 교사는 최근 디카시집 ‘게릴라’를 출간했다.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 ‘중독’ 등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새로 선보인 디카시집에는 스마트폰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과 짧지만 강렬한 시 50편이 담겼다. 자연, 인간관계, 현대인의 삶과 고통, 문명의 무자비성 등 다양한 주제를 노래한다. 한글과 영문, 두 가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김 교사는 디카시를 두고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일상성’과 복잡다단한 세상을 상징적으로 요약하는 ‘압축성’,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소통성’을 가진 현대 시”라고 정의했다.
정통 시를 고집했던 그가 디카시에 빠진 건 지난해 12월 무렵이다. 문득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된다는 점, 보고 읽는 형태이기 때문에 짧지만 울림이 길다는 점, 시를 어려워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았다.
김 교사는 “학교 현장은 시를 쓰는 ‘텃밭’이 돼 준다”며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동심과 순수함을 잃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번 디카시집에도 동시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똥꽃’과 ‘쉿’이다. 가녀린 줄기에 달린 샛노란 들꽃을 보고 그는 ‘똥꽃’을 썼다. ‘저 똥 누고 간 아기의 엉덩이/엄마가 살며시 닦아줄라나/누렁이가 살살 살 핥아주려나.’ ‘쉿’은 들풀이 무성한 공터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한 소녀의 모습을 보고 ‘지금은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천사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디카시를 수업에 활용해볼 것을 추천했다. ‘시’라고 하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디카시는 디지털기기와 SNS 문화에 익숙한 요즘 세대도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우리 사회는 창의력과 사고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한다”며 “사진을 찍고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상상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틀에서 벗어나 생각하기’에 익숙해진다”고 했다.
김 교사의 바람은 과거 젊은 세대가 시집과 소설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문학을 향유했던 것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디카시를 즐기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는 “일상에서 접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