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는 수업을 시작할 때 수업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전체적인 수업의 구성과 수업 내용의 개요까지도 소개한다. 이를 영화에 빗대면 영화를 시작할 때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 영화의 구성과 큰 흐름을 먼저 소개하는 것과 같다. 만일 영화를 이렇게 만든다면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기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이처럼 일부러 감동이나 감탄을 빼앗고자 하는 것처럼 구성돼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탄탄한 구조를 가진 수업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구조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구조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보통 발단, 갈등, 절정, 그리고 대단원이라는 4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도입부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이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서서히 중심 갈등을 등장시키는 단계다. 또한 독자나 관객이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에 빠져들어 등장인물이 겪는 고난을 함께 걱정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단계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중심 사건을 위한 갈등은 보통 영화가 시작된 지 20분 후에 등장한다.
수업에서도 이야기의 발단에 해당하는 도입 부분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갖고 몰입하도록 하기가 힘들다. 도입 부분에 복선도 깔고, 그날 수업 내용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할 때, 그리고 전혀 예상치 않은 반전을 경험할 때 학생들은 강의에 빠져들고 오래 기억한다.
영화가 갑작스런 총격전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도입부에서 갑자기 갈등과 긴장을 조성할 수도 있다. 수업 시작과 더불어 그날 배울 내용에 대해 간단한 퀴즈를 만들어 미리 풀어보도록 하거나 예습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는 등의 활동은 갈등과 긴장을 조성하면서 수업을 시작하는 한 방법이다.
이야기구조의 핵심인 ‘이야기의 4원칙’은 인과성, 갈등, 복잡성, 그리고 인물이다. 이야기구조를 차용하면 내용을 쉽게 기억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모든 이야기가 4원칙의 첫 번째인 ‘인과성’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이다. 인과성에 따라 만들어진 이야기는 줄거리의 한 부분만 기억해도 인과관계의 고리에 의해 연결돼 있어 전후의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 뇌는 원인과 결과 추론에 적합하게 발달돼 있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생략해도, 그리고 어느 정도 힌트만 주면 그 안에서 인과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인과성 추론 능력을 어느 정도 활용할 여지가 있을 때 이야기 안에서 재미를 느낀다.
이는 수업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학생들의 인과성 추론 능력 수준과 선행지식 수준을 감안해 불필요한 부분은 생략하고, 나아가 적절한 추론 여지를 주면서 수업의 속도를 조절할 때 학생들은 그 수업을 좋아한다. 추론 여지가 있다는 말은 수업을 들으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의 여지를 주고 생각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이유는 의미를 생각할 기회를 가졌을 때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야기구조를 벤치마킹하기에 적합한 과목은 역사와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학 관련 과목들이다. 다른 과목들에서도 일부 벤치마킹이 가능하다. 가령 수학이나 과학 등에서 이야기구조를 차용해 원리나 이야기가 나온 배경, 그리고 배우는 원리를 토대로 한 현실 이해 시도 등을 할 수 있다. 이야기구조를 수업에 활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과 예시는 필자의 블로그 글(
http://me2.do/Gkub5h07)을 참고해도 좋겠다.
수업은 이미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즉석영화다. 교사 혼자서 시나리오 작가, 감독, 연출, 배우를 모두 하려고 하면 교사만 힘들 뿐 수준 높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참여해 만들어진 영화에 더 큰 관심과 흥미를 보인다. 수업이 갖고 있는 즉석영화로서의 강점을 살려 하루에 한 번 혹은 한 주일에 한 번 정도는 학생들과 함께 살아 꿈틀대는 명작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