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우리나라에서 잊혀져가는 쓰나미 대재앙. 아직도 복구하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벌써 복구된 곳도 많아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내가 갔을때에는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을정도로 심각했는데 두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복구에 활기가 붙어 하루하루가 다르게 많이 좋아져간다고 한다.
처음에 쓰나미 발생으로 인한 피해를 한국에서 TV나 인터넷 등으로 접하면서 안타까웠던 와중에 내가 가서 그들을 돕자!! 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정보를 수집해 한 NGO단체의 단원으로 입단해 그렇게 나의 긴급구호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2004년 12월 26일 남아시아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 실종, 그리고 남은건... 눈물과 피해 현장들... 우리는 제일 먼저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인 카오락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국정부가 가장 복구를 서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대로인 듯 예상했던 만큼 그 이상으로 피해가 막심했다. 우리가 봉사하러 간 곳은 태국 정부의 손길이 닿지 못한 타이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작은 규모의 마을. 나이라이 마을과 타블라묵 마을이였다.
어른들이 복구를 위해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보니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도 참사현장이나 사체 등을 경험해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처한 경우가 많은데도 돌보지 못해 이들을 카운슬링하고 돌봐주는 것이 현재 가장 시급하고 중요했다. 그래서 우린 첫 번째 마을의 나이라이 학교에서 태국스텝과 숑콜라 대학생들과 함께 학교 보수 프로그램과 CGL(Culture Game Leasure)을 수행하게 되었다. 어린이 카운슬링 프로그램에는 정서적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위주로 계획, 진행 이였다.
먼저 우린 타이 전통놀이와 한국 전통놀이를 하면서 어린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 후 미술치료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얼굴 그리기와 살고 싶은 마을 그리기를 했는데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특히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올챙이 송"을 율동과 함께 노래를 가르쳤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학교 보수 프로그램으로 페인트칠을 하게 되었는데 힘들기는커녕 아이들이 기뻐할 얼굴을 떠올려 보니 저절로 웃음만 나왔다. 완성된 모습을 보자 아...! 정말 협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두 번째 마을의 카말라 학교에서도 어린이 카운슬링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전에 갈고 닦았던 솜씨를 훨씬 능숙하게 발휘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 끝에 팀마다 장기자랑을 선보였는데 우리 팀은 태국전통노래인 “독마이(꽃)” 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태국 전통놀이들과 노래를 배워가면서 나는 한발자국씩 그 문화에 매료되어 흡수되어가는 듯 했다.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배우면서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갔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는 홈 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국의 문화를 알아 갈 때의 신선함과 신기함이 내 몸을 감싸는 듯 했다. 아이들이 프로그램 참여 소감을 말하면서 감사의 말을 전하며 울었는데 나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함께 활동했던 태국 친구들의 그 따스한 마음과 친절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빨리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 밝고 씩씩하게 성장했으면... 그리고 그렇게 좋아했던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7박 8일이었지만 우리들의 요구로 전 세계 NGO단체로는 처음으로 그것도 한국인으로 피피섬에 들어가 봉사활동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에 고등학생이라고 어리다며 하지 말라 하셨지만 나의 열정을 아무도 꺾을 순 없었다.
10m해일이 통째로 삼켰던 죽음의 피피섬... 이러한 이유로 정부에서 나온 군인과 경찰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은 출입을 꺼리던 곳 이였다. 17명 중 자유의지로 8명만 이 피피섬에 남게 되어 말 그대로 육체노동을 하였다. 큰 짐들을 나루고 돌, 나무, 깨진 유리, 옷더미 등을 나르고 태우고 쓸만한 물건들은 따로 모아놓는 작업 등을 하였다. 우리 8명이 조금씩 조금씩 죽음의 피피섬에 희망을 전달하여 사랑을 실천하였다. 때론 너무 덥고 힘들었지만 아직 철없고 어렸던 내가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지켜봐준 언니, 오빠들... 따뜻한 손길의 현지 교민들... 그리고 따뜻한 웃음을 지어준 예쁜 미소가 아니였으면 그렇게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장기봉사로 피피섬에 뿌리를 내리면서 다른 단체들을 통솔하는 스텝으로 자리매김까지 하였다.
피피섬... 여전히 그 곳의 하루는 힘들다. 초기엔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아직도 쓰레기를 섬에서 내륙으로 치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피피섬을 산에서 바라보는 전경과 그 맑고 투명한 바다는 여전히 아찔하도록 아름답다. 그 폐허의 절망의 구렁텅이에서도 아름답게 비춰오는 태양을 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동시에 복구에 대한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직까지 마음속의 슬픔이 눈매에 그대로 나타내는 그 이슬 맺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아주 오랫동안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피해지역 복구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은 미약할지 모르나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사랑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 이였다.
TRUE LOVE IN ACTION... 앞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대로 사랑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여 소외된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앞으로의 할 일이 많아졌다... 내 인생의 반환점 IN THAILAND... 도전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 이번 경험으로 봉사하는 가슴 따뜻한 기쁜 삶의 맛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얻은 게 너무 많아 이 따뜻함을 어떻게 되돌려 줄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남을 봉사하러 가서 오히려 내가 더 얻은 게 많고 마음의 병까지 치유 될 수 있었다. 봉사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고, 하루빨리 봉사를 통해 얻은 이 기쁨의 맛을 아이들 가슴에 널리 전해주고 싶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 언어소통의 어려움이 많았는데 영어로 손짓 ,발짓으로 그리고 전 세계 공통으로 먹히는 미소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눴다. 새심 영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었고 단체생활(소속감, 공동체 의식)의 과정을 통해 우린 한반도의 가족이 아니라 지구의 가족이구나! 하고 느꼈고 세계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우린 하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도 섞이지 않은 태국과 태국사람들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것도 다르고 각자의 사연도 많았지만 우리는 아주 많은 공통점이 있다. 땀 냄새, 사랑냄새, 주고받은 눈빛, 도전하는 자세, 눈물, 뿌듯함, 사랑, 헌신... 그 안에 우리자신이... 서로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지금 폐허가 된 태국을 예전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다시 한번 들렸던 나이라이 학교에서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의 그 애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생기발랄한 모습 그 자체였다!! 임시주거소를 짓던게 벌써 완성이 되어있고 없던 담도 생겨났고 복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그 모습을 직접 확인하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기억해 주는지 올챙이송도 따라하고 곰세마리 노래도 부르고 “상민~!! 상민~!!” 하면서 내 이름도 기억해주었다... 너무너무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고 들려오는 소리로는 이제 아이들이 바다도 들어가고, 피피섬은 쓰레기로 덮여졌던 길도 다 뚫었고 쓰레기도 거의 다 치워가 예전의 모습이 서서히 보여진다고 한다.
그리고 태국 피해 지역이었던 다른 해변가들에서는 벌써 복구가 다 되어 관광객들이 조금씩 조금씩 몰려든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단원들의 우정이 유달리 깊었던 관계로 해단식겸 모임을 가졌는데 거기서 국내에서도 한달에 최소 두 번 이상 봉사하러 다니자~ 라는 의견이 나와 정식까페도 만들었고 활동도 할 예정이다. 비록 지금 고3이라서 활동을 못하지만 내년엔 국내뿐만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사랑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