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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리포트(미분류)

10년 역사 학운위, 개선할점 없나?

“우리 학교 운영위원회는 유별나요. 시작했다 하면 밤 8시 9시이고, 선생님들은 마치 청문회 하듯 불러다 앉혀 놓고 퇴근도 못하게 해요. ”

필자가 첫 부임하자마자 어느 여교사가 귀뜸 해준 우리 학교 운영위원회 운영 상황이었다. 참으로 황당했고 어떻게 개선 해 갈 까를 깊이 고심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선생님들의 사기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3월 둘째 주 어느 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우여곡절 끝에 신학기 새 학교운영위원회가 구성됐다. 역시 작년에 참가했던 운영위원들이 또 당선 됐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4월 어느 날, 회의실에서 첫 회 운영위원회 회의가 본관 회의실에서 열렸다.

학교장 인사가 끝나고 안건 심의에 들어갔다. 말 듣던 대로 너무나 진지했다. 발언하는 사람 외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숨막힐 지경이었다. 그때 심의 안건 중 하나가 「1학년 고구마 캐러가기 현장학습 건」이었다. 한 남자 학운 운영위원이 입을 열었다.

“자료에 의하면 체험 학습비 7000원을 내고 고구마를 3kg을 캐서 가져오게 돼 있는데, 현재 시중 고구마 가격으로 치면 3천원 어치도 안 되는데 왜 돈을 많이 들여 현장 학습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고구마 캐오는 양 3kg에 비해서 체험 학습비 7000원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경제원리로 따지면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할말이 있었지만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마침 다른 위원들의 구구절절 설득에 의해 간신히 통과 됐다. 그러니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겠는가? 하지만 첫날이고, 또 처음 부임한 교장이라서 끝날 때까지 이성을 잃지 않았다. 좋은 듯이 회의를 마쳤고, 첫날이라서 운영위원들에게 인사도 할 겸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그러고 보니 밤 8시경이 됐다. 긴장했던 터라 몹시 피곤했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단 몇시간이었지만 정말 기나긴 여정 같았다.

이튿날이었다. 어제 운영위원회 소식이 고구마 캐러가기를 신청했던 1학년 부장 선생님이 교장실로 찾아왔다. 체험학습을 안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어가면서 체험학습을 갈 필요가 있느냐는 이유였다. 학교장으로서 난감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선생님들을 설득시켰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교육을 생각하지 않는, 아니 모른체 하는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아울러 학교운영에 이렇다하게 도움되지 않는 학교운영위원회 만들어 놓고 우리 선생님들 열정에 찬물을 끼얹나 싶어 화까지 났다.

이것이 현재 각급 학교 운영위원회의 수준이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라는데 있다. 시골, 소규모 학교 운영위원회의 상황은 더더욱 말이 아니다. 우선 학부모 운영위원 정족수 채우기 자체부터가 너무나 힘들었었다. 농사일 때문에 학교에 나올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학기에 어린이 임원이 된 어린이를 찾아 그 부모에게 통 사정을 해서 부탁했었다. 그러니 그 학교 운영위원회가 제대로 될리 있겠는가? 모였다 하면 학교 의도대로 일사철리 무사통과, 바로 그것이었다.

도시라고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운영위원 할만한 사람은 하기 싫어하고, 해봤자 도움이 안된다거나, 오히려 해서는 안 될 사람이 본인의 이해 때문에 지원하곤 하는 것이다. 앞으로 선거에 출마해서 학부모 표가 필요하다 던지, 또는 사업관계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여 양질의 운영위원 뽑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모두가 시간낭비, 정력낭비, 생기는 것 없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며, 말 그대로 잘해야 본전이라는 의식 때문에 할만 한 사람은 모두 꽁무니를 빼기 때문이다.

95년 5월 31일, 교육개혁 당시 운영위원회 시책을 처음 도입할 당시, 필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많은 연수를 받았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교육제도를 거론하며 학교운영위원회 도입 당위성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후, 10년을 겪어 온 지금, 학교운영위원회의 존재가치를 생각해 보자. 말 그대로 유명무실하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도입때 부터 우리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았고 선진국 흉내를 내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 운영위원회가 그래도 학교에 도움을 주고, 교원들이 인정해서 필요로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되려면, 한국적인, 우리 형편에 맞는 학교 운영위원회가 돼야한다. 그것은 곧, 학교 운영위원회를 심의 기구가 아닌, 의결 기구화 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짓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의 형태로는 안 된다. 하기 좋은 말만 늘어 놓고 뒤로 빠지면 모든 건 학교장 몫, 학교 몫으로 돼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 좋다하겠는가? 학교장이 좋다하겠는가? 법으로 돼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지 그렇지 않으면 벌써 없어졌을 제도였다.

두번째는, 운영위원들에게 어떤 형태로 던 보수를 주는 것이다. 지금 동정 자문회의에 참석한다든가, 또는 어떤 회의에 참석해도 수당과 식사를 대접하는데 학교운영위원은 뭔가 말이다. 전무하지 않는가? 이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현재의 운영위원회 방식은 오히려 교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교육력을 약화시킬 소지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학교장의 과 불협화음만 만들어 오히려 교육력을 야화 시킬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운영위원회 10년이 지난 지금, 학교운영위원회 주변에 무슨 말이 오고가는지 아는가?

바로 “회식을 잘하는 학교는 흥하고, 회의를 잘하는 학교는 망한다.” 이다. 이 말의 의미를 잘 되새겨 봐야 한다. 운영위원회 끝나고 회식이라도 하는 학교는 그래도 났다. 그러나 입씨름하고, 고성이 오가는 학교는 뭔가? 기왕에 생긴 운영위원회, 회식이라도 자주 하는 그런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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