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저녁 마땅한 반찬이 없어 뭐 먹을까 했는데 온 가족이 다 같이 만들 수 있는 돈 가스를 먹기로 했다. 나와 동생과 아빠는 돈 가스 튀김을, 엄만 튀기고 힘든(?) 시간 끝에 완성되었다. 식당꺼 보단 좀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가족끼리 만들어 먹으니 자랑스러웠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내가 아플 때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간호 해주었다. 남이라면 그렇게 보살펴 주었을까? 역시 우리가족이다."
이 두 내용은 '역시 우리 가족이야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을 말해보세요'라는 질문에 답한 내용들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라 마음에 담아 두고 지낸다.
요즈음 학생들의 가슴아픈 자살사고가 연이어 발생되고 있다. 그 때마다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게 성적이다. 학생들의 자살동기가 학교성적이라는 것에 교직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긴장된다. 나도 그 책임에서 자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학업의 판단가치를 부여하는 입장 때문에 맘이 편치 않은 게 당연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청소년 폭력문제가 발생되기만 하면 이 또한 학교폭력이다. 물론 그들의 신분이 학생이라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책임을 떠넘기거나 회피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학교가 학생문제에 중심에 서 있기에, 그들을 훈육할 입장에서는 늘 걱정스럽고, 안타깝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학교 울타리 안에다 놓고 볼 수 없어 전자의 예를 들어보았다.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는 가정이고 학교는 그 다음이다. 먼저 가정이 정상적이고 화목한 가정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밝고 평화스럽다. 건전한 가정은 부모의 책임이다. 부모는 자신이 괴로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헤어질 지경이더라도, 우선 시 되어야 하는 게 자녀에 대한 무한 책임이다. 그 책임 속에는 반듯이 사랑이 있어있어야만 가치를 더 한다.
의무적인 사랑보다 관심 있는 사랑 말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관심의 대상임을 느낄 때 가장 순하고 정직하게 다가온다. '야''너' 보다는 이름이 불려지기를 원하고, 아무리 사소하게 생각되는 일이라도 같이 하기를 좋아하며, 물론 결과에 대한 칭찬도 함께라면 더 좋다.
세끼 중 한끼라도 온 가족이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함께 하는 교육의 시작이다. 같이 나누면서 상대방의 배려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밥상머리 교육이 이루어진다. 모 방송국에서 주말에 방영하는'부모님 전상서'라는 드라마의 인기가 높다. 아주 평범하고 진부한 내용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 간의 사랑이 배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 아침에 학교에 다녀오겠다는 인사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잘하고 오라'는 답사는 벌써 옛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요즈음은 '무슨 일 있으면 빨랑 전화 해!'라고 한다. 완벽한 임전(臨戰)태세다. 그래도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정도는 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