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는 한창 봄소풍의 계절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가 놀이공원을 소풍을 가지만 70년대만해도 주로 유적지로 갔었다. 1977년 용인의 대지초교도 '위인의 얼' 이어받기 차원에서 오달제(1609-1637, 조선 중기 문인) 묘소로 봄소풍을 갔었다. 전교생 6학급 250명이 4km 넘는 거리를 걸어서 가는 것이다. 일명 원족이라고도 불렀다.
양복 넥타이 차림에 어린이 모자를 잠시 빌려 쓰고 사회를 보는 새내기 교사의 모습도 보인다. 빡빡머리 모양의 두 어린이의 머리 모습이 그 당시 시대상을 보여 주고 있다. 모자를 쓴 어린이 모습도 보인다. 그 당시만해도 모자는 소풍 때 쓰는 일종의 패션이었다. 흰스타킹에 치마 차림의 여자 어린이도 나들이에 앞서가는 패션이었다.
오락 시간에 학년 대표로 12명의 어린이가 출연하여 교과서에서 배운 노래를 합창했다. 아마도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로 몇 차례 연습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요를 부르거나 춤을 추지만...
소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학부모의 모습도 보인다. 그 당시 학부모님들. 아무리 먼 곳도 무거운 짐(먹을 것)을 머리에 이고 학생들과 걸어서 소풍을 같이 걸어서 갔었다. 자식과 선생님에게 쏟는 정성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은 38세의 성인이 되어 자녀까지 둔 당시의 어린이들. 이 사진을 보며 무엇을 생각할까?
유년 시절을 회상하고 자녀에게 부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들려주며 가정의 행복을 만들어 보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졌보았으면 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 사진을 촬영한 그 당시 이장섭 교감 선생님은 이미 정년퇴직을 하셨다. 그 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당시의 사회를 보던 새내기 교사는 지금 불혹 끝자락의 희끗희끗한 머리의 교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