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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리포트(미분류)

꽃보다 예쁜 우리 반 아이들

이제 막 눈을 뜬 벚꽃이 팝콘처?와르르 터져서 군침이 돌게 하는 벚꽃의 행렬로 산 속 학교는 날마다 축제 분위기입니다. 어쩌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연곡분교장의 전교생이 동네 교회에 나가서 바이올린과 부채춤을 공연하던 날 밤에 내린 하얀 눈으로 학교가 온통 하얀 등을 켰던 때처럼…. 교정의 나무들이 켜 놓은 하얀 수은등을 두고 잠을 잔다는 것은 벚꽃에 참 미안한 일입니다.

저렇게 한 자리에서 한 순간에 모든 정열을 터뜨린 그 옹골차고 기특한 모습, 겨우내 지켜낸 꽃망울의 인내와 수액을 고르며 꽃 피울 그 날을 위해 참아온 뿌리의 질긴 모성애를 생각하면 모두 떠난 교정에서 나만이라도 눈이 시리도록 봐줘야 될 것 같습니다.

꽃들이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은 아니지만 꽃처럼 살고 싶어지는 부질없는 욕심에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며칠만이라도 바람도 불지 말고 비도 오지 않기를…. 그래서 좀 더 오래 곁에서 보고 싶습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아무런 말도 없이 꽃 피울 그 날을 어기지 않고 약속을 지키고야 마는 무언의 가르침을 들어보려고 현관을 나서니 키 작은 데이지 꽃이,

'주인님! 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피었는데 저는 봐주지 않나요? 내 친구 팬지의 노랑 날개는 또 얼마나 예쁜데요!'

하며 발길을 붙잡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우리 이재춘 주사님의 정성을 먹고 자라서 통통한 줄기를 자랑하며 날마다 꽃대를 올리는 귀여운 녀석들입니다. 그런데도 만약에 꽃들이 말을 한다면 나는 덜 좋아할 것 같습니다. 꾸밈말이 필요 없는, 아니 더 이상 꾸밀 말조차 없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도 저렇게 말이 없어도 통하는 친구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반 아이들입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잘 통한다는 것을, 1, 2학년을 처음 맡은 올해 깨달은 거랍니다. 머리를 굴릴 줄 모르는, 그저 투명함이 드러나는 그 모습이 꽃이랍니다. 아마 나도 나이가 들면서 다시 아이들이 되어가는 모양입니다.

우리 1, 2학년 아이들에게 가르칠 바이올린을 연습하고 나니 벌써 어스름이 내려옵니다. 바이올린 강사님께 한 곡이라도 더 빨리 배우게 하려면 나도 늘 연습을 해서 실기 지도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담임인 내가 모르면 복습을 시키기도 어려우니까요.

아직도 우리 1학년 꼬마들은 바이올린을 하자 하면 어깨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래도 작년 유치원 때부터 배운 서효는 연습을 마다하지 않고 즐겨하니 참 예쁩니다. 연습하라는 횟수만큼 끝내고 쪼르르 달려오면,

"자, 이번에는 악보도 안 보고, 손가락도 안 보고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도록 해보렴."
"예, 선생님. 저도 할 수 있어요."

하며 제 키만 한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을 보면 그 앙증맞은 모습이 귀여워 뽀뽀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가장 가지고 싶은 물건이 바이올린이라는 것을 보면 우리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바이올린 지도가 그 아이의 음악성을 기르는 데 힘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놀라운 집중력과 차분함까지도 길러지고 있답니다.

우리 아이들도 한 송이 꽃이 되기 위해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 학교생활. 이제 겨우 유치원 생활을 접은 1학년이면서도 60분 이상 진행되는 복식수업을 잘 견디는 모습이 참 대견합니다.

좋은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늘 자랑하는 진우, 아침마다 머리 감았다고 머리를 디미는 나라, 알림장 도장 찍어 왔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서효, 그림을 그렸다고 자랑하는 은혜, 손수건 가지고 왔다고 자랑하는 찬우, 화장실에서는 선생님께 배운 대로 '톡톡'도 열심히 하며 위생적인 습관을 몸에 익혀 가며 작은 신사들이 되어가는 우리 1학년 남자 애들. 실내화도 제일 깨끗이 빨아오는 그 좋은 습관이 평생 가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잔소리 대장을 하느라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배가 고픕니다.

연필 잡기, 글씨 획순 지도하기를 비롯해서 책상 속 정리하기 등, 평생 갈지도 모르는 기초·기본 학습 습관을 앵무새처럼 쫑알대는 1, 2학년 왕초보 선생은 이제야 저학년 선생님들의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씻으라는 손도 잘 씻습니다. 글씨를 쓸 때마다 꼭 끼워 쓰라는 책받침을 잘 챙기지 못하는 서효는 물건 챙기느라 해가 갑니다.

동그라미 하나라도 더 보태서 월말에 주는 동화책 선물을 제일 먼저 고르려고 다섯 명의 경쟁자들은 하루가 바쁘기만 합니다.

이 아이들이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 자연의 모습을 닮아 꽃처럼 살 수 있기를, 아니 꽃을 피우기에는 너무 힘든 토양을 만나더라도 기어이 꽃을 피워야 한다는 '살아 있음의 약속'을, 저 벚꽃처럼, 팬지처럼, 데이지처럼 지켜 내리라 든든하게 믿으며 말없이 뿌리의 역할을 다 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들 스스로 이미 꽃이기에 아름다운 꽃을 보면 감탄하면서도 꺾을 줄도 모른답니다. 꽃이 아파한다는 것을 참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아이들을 몰고 꽃들과 이야기를 하러 나가야겠습니다. 꽃들을 면담하는 거랍니다. 사람 꽃인 아이들과 자연의 꽃들이 나눌 언어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오늘 밤은 참 퇴근하기 싫은 밤입니다.

-2005년 봄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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