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어달 동안 이런저런 백일장대회를 줄잡아 10여군데 다녔는데, 문예지도 교사인 나로선 일년 농사를 거의 끝낸 셈이다. 대학교를 비롯한 지자체 등이 주관하는 문예백일장대회가 주로 봄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백일장대회가 대학 홍보용으로 주최되거나 단체장 낯내기 행사의 일원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무룻 학생들에겐 글쓰기라는 소중한 체험의 장이 될 뿐 아니라 수상과 함께 뭔가 해냈다는 벅찬 감격을 안겨주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교장·교감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자청하여 학생들 문예지도를 굳이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이미 ‘교포’(교감, 교장되기를 포기한 교사)이므로 학생들 수상을 기회삼아 무슨 점수를 따거나 교장, 교감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하는 속내가 없다. 아직까지는 내가 좋아서 그리 할 뿐이다.
학생들 입상 성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장원을 차지하여 그 대학교 장학생으로 진학하거나 무려 1백만원의 상금을 받은 학생도 있다. 어느 경우엔 장려상조차 받지 못해 시무룩해진 학생들을 태운 채 귀로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똑같은 백일장인데도 그 진행은 사뭇 다르다. 백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 자연 비교가 된다. 가장 아쉬운건 강의실에 ‘가둬놓고’ 치르는 백일장이다. 국가시험인 수능에서마저 휴대폰 등을 통한 조직적 커닝이 파문을 일으킨 바 있어 딴은 이해가 되지만, 솔직히 씁쓰름하다. 백일장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듯해서다.
다음은 상금의 규모이다. 특히 지자체 및 유관기관 백일장은 장원학생에게도 고작 문화상품권 3~5만원을 주고 있다. 지용백일장의 고등부장원 상금이 1백만원이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아마 수상자체의 명예라는 가치에 비중을 두는지 모르겠지만, 최고상인 장원인 점과 학생들 노고를 감안하면 3~5만원은 너무 약하거나 박하다.
다음 지도교사 푸대접도 아쉬운 점이다. 대학교의 경우 그래도 그런 느낌이 덜 들지만, 그외는 불쾌하거나 괘씸할 정도이다. 단언하지만 지도교사들이 나서주지 않으면 백일장대회는 원천적으로 열릴 수가 없다. 인터넷 세상이라지만 공문접수부터 참가신청서, 인솔 및 귀가에 이르기까지 지도교사의 ‘힘’으로 학생들이 백일장대회에 참가하게 되는 것.
그래서 대학교의 지도교사상은 반갑다. 나름대로 지도교사의 노고를 챙겨주는 주최측의 정성이 묻어나서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일부 대학교에 그치고 있는 점이다. 하나 더 든다면 더러 부상이 문화상품권 10장(5만원상당)으로 그쳐 다소 의아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친김에 학부형 이야기도 하고 넘어가야겠다. 아직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장원을 받고 왕복 4~5시간 차를 몰아 학생들을 백일장에 데리고 다녀도 애쓴다커니 감사하다커니 하는 전화 한 통 없다. 글쎄, 묵묵히 실천하는 사도(師道)와는 거리가 먼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의 글솜씨가 차츰 나아지는 걸 지켜보는 기쁨은 1시간의 수업과 비길 바가 아니다. 그만큼 즐겁다. 무한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간혹 백일장대회에서 만나는 학부형의 말이 힘이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