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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리포트(미분류)


산골에 찾아든 가을밤. 가을벌레들이 숨죽이며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지 조용해진 요즈음, 피아골의 분교엔 밤이 일찍 찾아온다. 창밖이 어두워서 사택으로 가려고 문을 잠그고 나니 달님이 보인다. 팔월 보름이 지났으나 아직은 살이 남아있는 달이 보기 좋다. 달님을 보니 집으로 가는 게 억울해서 다시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왔다. 달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교정을 빠져 나가기가 어려운데, 달님이 친구 해 줄 터이니 마음이 놓인다.

친구란 참 좋은 단어이다. 그것이 비록 말이 통하지 않은 달님이건 작은 고양이 한 마리이거나 말이다. 어쩌면 진정한 친구 사이에는 말조차 필요 없지만……멀리 있어도 느낌으로 통하고 언제 찾아도 다시 반가우며 요란하지 않으니 친구는 해님보다는 달님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 뜨겁지 않으니 싫증이 나지 않아 좋고 날마다 볼 수 없으니 잔잔한 그리움까지 채웠다가 비워야 하는 아쉬움까지 간직한 달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끼는 사람들에게,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글쇠판을 두드린다. 그리움의 편지를 쓰라고 달님이 창밖에서 재촉한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많이 사랑하고 그리워 할 수 있는 시간을 뒤로 미루지 말라고, 누군가를 격려하라고 졸라댄다. 가을에는 그래야 한다고 글쇠판으로 나를 끌고 간다.

달을 보니 군에 간 아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건다. 다행히 매복 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전화를 받는다. 텅 빈 학교에 혼자 있어서인지, 차분한 음악 탓인지, 아니면 동그마니 떠오른 달님 때문인지 목이 메는 걸 참으며 아들 목소리를 들었다.

추석 연휴에도 최전방 부대에서 수색과 매복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녀석의 말이 가슴에 꽂혀 기어이 눈물을 만들고 만다. 일하는 엄마라서 초등학교 때부터 강요된 홀로서기를 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아들이 오늘은 참 안쓰럽다. 시험과 싸우듯 보낸 고등학교 3년, 객지에서 보낸 대학 1년을 뒤로 하고 군에 자원입대를 하여 자신과 싸우고 있는 아들은 시간이 아깝다고 한다.

그런 아들에게 그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고 자신을 다듬고 숙성시키는 시간이니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군 생활을 하라고 다독이는 말밖에 해 줄 게 없는 어미 노릇이 안타깝다. 어쩌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을 보며 사색과 인내로 굵은 나이테를 만들어 가는 값진 시간을 만드는 귀한 기회로 삼으라고…….

꽃을 버려야 열매를 보듯, 달도 이지러져야 다시 보름달이 되듯, 지금은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니 채우는 그 날들을 위해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반가움에 다 잊고 말았다.

아들도 저 달님을 보고 있으리라. 깊어가는 가을밤에 보름달을 보면서 매복에 들어가 보초를 서면서 저 달님을 보며 그리움을 삭히리라.

‘아들아! 삭힐 수만 있다면 생각도 키워 녹이고 사색도 크게 삭히고 마음도 달님처럼 늘 겸손하게 요란하지 않게 채웠다 비우면서도 기다리는 미덕을 배우거라. 할 수만 있다면 달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말거라. 엄마는 달을 보며 살지 못 했으니, 너는 달이 언제 떠서 보름달이 되어가며 언제 그믐달이 되어가는 지, 평생 동안 네가 본 보름달의 수를 헤아리고 사색하며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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