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도 늘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현재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양 바삐 뛰어다니다 보면 하루가 간다. 생각해 보면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온다.
영도다리를 지나 부산의 관문, 오륙도가 저 멀리 보이는 산허리를 돌아서면 한국해양대학교 들어가는 입구에 동삼동패총전시관이 있다. 영도 하리 바닷가에 자리 잡은 부산박물관의 동삼동패총전시관을 둘러보면 ‘우리가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기나긴 여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구나’하는 감회라면 감회랄까, 그런 느낌이 든다. 석양까지 비치면 더욱 그렇다.
패총이란 우리 조상들이 조개를 채취하여 먹고 버리고, 먹고 버리고, 한없이 버려 산처럼 쌓여있는 유적지가 아닌가? 마치 무덤처럼 쌓였다 해서 조개 무덤 혹은 조개무지라고도 부른다. 단지 그것뿐인데 나는 놀랐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일, 이년 먹고 버린 것이 아니다. 일, 이십년도 아니다. 7천 5백 년 전부터 3천 5백 년 전까지 무려 4천년을 먹고 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내 눈 앞에 비록 조개껍질이지만 쌓이고 쌓여 역사로서 전시되어있다. 나는 이렇게 오랜 기간을 한곳에 모여 있는 인간의 흔적을 본 적이 없다. 단지 책으로만, 아님 일부분인 역사의 파편으로만 보아왔을 뿐이다.
패총은 지금부터 1만2천년 전쯤 자연환경의 변화로 신석기인들이 바다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출현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역사책에서 본 인류문명의 최초의 발생지 메스포타미아에서 최초의 도시 ‘에리두’가 바닷가에 생겨난 것도,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바닷가에 세워진 것도, 고래가 새겨진 울산 반구대 암각화도 모두 그런 이유와 관련이 있을 듯싶다.
그렇지만 그건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여기 층층이 쌓여있는 유물은 나에겐 역사로 봐야하나? 아님 소설인가?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데 나에겐 왠지 이게 신화로만 느껴지지만 이건 분명 역사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이순간은 사마천의 ‘사기’가 아무리 위대해도 여기서는 한낱 역사의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8천년 전 무렵부터 패총이 만들어지고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많은 조개껍질은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만들고, 알칼리성 토양에는 미생물이 활동을 잘 할 수 없으므로 패총에는 조개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식용으로 이용했던 동물이나 생선뼈 등과 같이 아주 작은 뼈까지도 잘 보존된다고 한다. 이건 나의 짧은 지식으로도 충분히 이해된다.
바깥 옛터는 이제 잔디밭이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변해있지만 바닷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기를 잡으면서 생활하는 배들이 늘어서 있다. 전시관이 있는 ‘하리’에서 ‘상리’로 가는 중간, 중리 바닷가로 갔다. 마을 이름이 재미있다. 아랫마을이니 하리(下里)이고 윗마을이니 상리였다. 진리란 이렇게 단순하니까, 중간에 있으니 중리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조개 무덤인 동삼동 패총 옆에는 지금도 해녀들이 조개 등 해산물을 잡아온다. 해녀들이 잡아온 조개를 한 접시 먹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연결해 보았다. 조상인 그들도 우리처럼 이렇게 조개를 먹었으리라.
세상은 넓은 의미로 보면 공평하므로,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게 마련이다. 그들은 하얀 쌀밥은 먹지 못했겠지만 아마 조개는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이런 조그만 조개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 시대에는 조개가 바닷가에 널려 있었을 터이니, 적어도 조개크기가 깔려있는 접시만한 것으로 배를 채웠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고 입맛을 돋구어본다.
유물은 조개가 그들의 생활에서 중요부분임을 알려준다. 조개를 먹기 위해 조개껍데기로 도구도 만들고, 조개 그물추도 만들고, 조개껍데기로 만든 화살촉으로 물고기를 잡았고, 얼굴모양을 한 조개가면 또한 조개팔찌를 만들어 예술적 감흥을 표현하기도 했다.
패총은 일종의 쓰레기장이므로 그 속에는 파손된 토기, 석기, 뼈연모, 토제품 등의 생활도구뿐만 아니라 무덤, 집 자리, 화덕시설도 발견되기도 한다. 시체도 오래되면 보물이 되듯이 패총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남긴 쓰레기장인 동시에 과거 생활과 문화 정보가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동삼동패총은 한반도 최고의 곡물인 기장과 조 뿐만 아니라 당시 한일 신석기문화의 교류관계를 알려주는 많은 양의 죠몽토기, 흑요석 등이 출토되었다. 흑요석은 화산지대에만 생산된다. 흑요석의 성분분석 결과 일본북큐수산으로 밝혀졌다. 그때에도 벌써 일본의 큐슈지방과 교류가 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지난 1999년 이곳에서 채취한 불탄 조·기장 탄화물을 캐나다 토론토대학에 의뢰해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을 해보니 신석기 중기인 5300년 전에 재배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반도에서 농사가 시작된 시기를 지금까지 확인된 것보다 1000년 이상 앞당길 수 있는 유물이라고는 하나 그 쪽 분야에선 문외한인 필자로서는 그렇거니 하고 자신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 없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동삼동패총전시관은 최근인 2002년에 개관하였으므로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작은 규모의 전시관에 불과하지만 시대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에게 신석기시대의 유물을 통해 우리의 존재와 문화를 밝히는데 좋은 꺼리를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부산근대역사관이나 임시수도기념관도 함께 방문하면 좋을 듯하다.
그러나 박물관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패총전시관 하나 보러 여기까지 방문하기엔 다소 부담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 영도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메뉴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태종대이다.
동삼동패총에서 1km 남짓 걸어가면 태종대가 나온다. 바다와 접한 태종대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태종대 순환도로는 산책하기 너무나 좋다. 바다를 한 눈에 굽어 볼 수도 있고, 기암절벽과 우거진 산림이 있다. 맑은 날이면 대마도도 볼 수 있고, 아래에는 새로 지워 더욱 명물이 된 등대와 자그마한 미술관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태종대 아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한번 타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영도다리 입구에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라는 <굳세어라 금순아〉의 노래비와 원로가수 현인씨의 동상이 세워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먹거리는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다. 배가 출출해진다면 영도다리를 건너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로 유명한 자갈치로 가보자. 자갈치는 우리나라 최대의 어시장으로서 싱싱한 생선회와 해산물을 싸게 먹을 수 있다. 부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으로 ‘자갈치 아지매’의 구수한 사투리를 느낄 수 있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눈을 즐겁게 하는 고래 고기 파는 좌판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곰장어 파는 집들이 많이 있다. 깻잎에 싸서 한입 가득 먹어 보면 그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10월의 부산은 온통 축제의 마당이다.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행사만 하더라도 자갈치축제, 구덕문화예술제, 상해거리축제, 서면문화예술축제, 동래읍성역사축제, 낙동민속예술제, 금정예술제, 범어사 개산대제 등 수없이 많다. 또한 부산은 또한 가장 역동적인 변화가 일으키고 있는 영화의 땅이기도 하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다. 그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