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학창 시절의 마지막 체험학습(추계소풍)이 있었다. 아이들의 마지막 소풍인 만큼 담임으로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문제는 소풍 장소였다. 초중고 12년을 생활해 오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 고장의 웬만한 장소는 거의 다녀 온 터였다.
매일 야간자율학습으로 지쳐있는 아이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수능시험 때문에 시간에 쫓기며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잘 나오지 않은 모의고사 결과를 보며 한숨짓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이렇게 답답한데 아이들 마음은 오죽하랴.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다그치기 보다 무언가 기분전환을 시켜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듯 잠깐의 휴식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전화위복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아이들은 하루 중 하늘을 몇 번이나 볼까? 학교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풀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생각해낸 곳이 ‘바다’였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맘껏 소리를 지르면 입시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보자,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심호흡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제각각이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험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라는 그 말만은 분명히 들렸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잠깐이나마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기도 하였고, 백사장 위에 ‘수능 대박’이라는 큰 글씨를 써놓고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나 또한 아이들의 저 웃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