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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리포트(미분류)

<나의 미국체험> 새로운 미술관, 박물관에 대한 짧은 생각

지난 4월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가 아들녀석의 미국 나들이도 시켜줄겸, 자기 사는 모습도 볼겸 놀러오라고 하였다. 평소에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친구의 집에 머물기보다는 주변의 숙소에 머무는 편이다. 상대방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배려의 마음과 나자신의 생활 리듬을 깨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이며, 남편과 두 딸래미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마음이 착하고 따듯하여 늘 남을 배려하는 친구의 덕택으로 발품이 허락하는 한 뉴욕의 곳곳을 다녔다. 기차를 타고 맨하튼에 내려 공원, 미술관, 박물관, 한국 영사관,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맛있게 하는 집 등을 걸어서 찾아다녔다. 뉴욕 메트로 폴리탄 박물관은 공사중이며, 부활절이 낀 일요일이라 휴관을 하였으나 근처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문을 열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데도 사람들이 표를 사러 바깥까지 줄을 서고 있었다. 이곳은 백남준님의 ‘비디오아트’ 전시로 한국에서도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다.

예술가들이란 누구인가? ‘예술가들이란 현재의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맥루헌의 정의를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한국을 비롯한 해외의 어디를 가더라도 박물관이나 미술관, 과학관, 혹은 학교를 많이 찾는다. 그러므로 어디에도 비슷하게 내놓여진 전시품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구겐하임은 다른 곳과는 달리 현대 작가들의 미술품과 예술품들이 많이 있었다. 그 작품들의 세계는 기존의 세상을 단순히 더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실험 정신으로 세상의 기존의 인식을 바꾸거나, 기술적인 발전을 위한 예술과 기술의 통합적 노력을 기울인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백남준님의 세계를 전시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예전에 화가인 김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세상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던가 아니면 각색하여 더 미화하던 시대에 모딜리아니는 인간의 추한 면까지 드러내 충격을 주었다고 하였다. 뭉크도 인간의 정신세계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여 불완전한 인간을 인정하도록 하였을 때 그 작품을 거부하는 사람들로 고생을 하였다. 산업사회의 인간과 환경의 해체를 고발하려 면과 선과 점으로 분해하여 그린 작품은 그래픽 등 산업미술이나 사진, TV의 영상매체의 탄생에 어떠한 기여를 하였을까? 한 작품실에서는 테레비의 ‘지지직’한 소음과 모니터에 물결치는 하얀 파동들을 보여주며 벽에 설명을 붙여놓았다. 이것도 작품인가? 기존의 미술이라는 것의 정의에 초점을 두면 의아할지 모르므로 내 나름대로 이곳을 새로운 세상을 여는 ‘정신의 실험실’, 각 분야를 아울러 새 지평을 열고자하는 ‘통합연구실’로 명명하였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신랑이 휴일에 운동을 하러가면 나는 그날 하루 ‘과부’가 되어야 하므로 책을 들고 따라나서는 때가 더러 있었다. 신랑은 운동을 하고 나는 주변을 걸으며 산책을 하고, 개미도 보고, 풀도 보고, 열매가 있으면 맛도 보고, 이러저러한 관찰을 하였다.

한국은 야산이 많다. 가만히 앉아 개미가 들락거리는 집을 보고 있자니 유리 어항같은 곳에 개미집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판매하던 교육용 개미집이 생각났다. 그러한 갇힌 공간에 개미를 넣어두고 일정한 기간이 되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을 고루 지닌 지역을 자연공원화하여 인공의 기술 즉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동물의 내부의 집에 카메라를 장치하여 외부의 TV로 보여주듯이 생물학자의 도움을 얻어 그 지역의 생물, 개미, 물고기, 식물 등의 추천받아 그 개체 하나하나가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보여주도록 하면 어떨까? 동식물, 세균 등 연구소는 물론 그 자연공원에 함께 있고,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관광코스는 최대한 멀리두어 그 생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한다. 사실 선정된 그 동식물에게는 엄청난 고난일 것이다.

사나운 사자나 한국같은 온대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동물들은 그 지역내에 할 수 없이 인공시설을 만들어야 하지만 최대한의 자연상태를 유지시키도록 지혜를 모으면 요즈음 동물원이나 식물원 한 곳을 유지하는데 천문학적인 유지비용이 들면서도 그 안의 동식물에게는 지옥이 되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요사이 읽은 한 책에서는 집 거실 유리 한편에 집을 지은 곤충의 생활을 보느라 TV도 보지 않고 삶이 재미있어진 두 부부의 아야기가 있었다. 예전에 우리도 지붕밑에 집짓고 사람과 함께 살던 제비가 있지 않았던가. 흥부는 그 덕도 좀 보았고,

동물원이나 식물원, 수족관 등에 동식물을 가두어놓고 인간이 구경하는 방식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던 20세기 방식이다. 지난 세기 과학의 발전은 인간 생활의 발전사에 커다란 공헌을 하여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된 인간의 희생을 줄이게 하였고, 질병의 고통에서 일부 벗어나 수명을 연장시켜주었으며, 먹거리의 부족 사태를 면하게 하였다. 이러한 발전이 동물원이나 식물원, 수족관의 눈요깃거리처럼 한정된 지역의 풍요만을 가져왔다는 비판을 있을지언정 야생의 자연상태를 길들이려던 수많은 노력에는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자연의 파괴를 통한 인간만을 위한 과학의 유토피아는 성취되지 않았고, 조물주의 설계에 도전한 곳곳에서 역작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도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따라서 미술관, 박물관, 식물원, 수족관 등의 형태도 같이 살아야 생물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전체를 고려하는 조물주에 겸손한 마음으로 자문을 구하며 변화를 모색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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