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싫은 가난, 저세상에선 꼭 벗길...'
11월 17일자 무등일보는 '무겁고 고된 삶'을 살아왔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별거로 누나와 단 둘이 살면서도 미술에 천부적 재능을 보인 A군은 그가 가난 속에서도 한 가닥 꿈을 지폈던 "예술고'진학이 좌절되자 끝내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그는 하루 세끼 중 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 이외에는 나머지 끼니는 거의 굶다시피하며 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한 쪽에서는 APEC 정상화담을 축하하며 몇 억짜리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세상에 그늘진 한 쪽에서는 지겹도록 가난한 환경과 가정불화의 덫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현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자살사망율의 변화 추이를 보면, 1990년대 초반부터 자살사망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5위의 자살사망율을 보이고 있어 자살사망율이 높은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보다 자살사망율이 높은 헝가리,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 등은 대부분 자살사망율이 1980년대 이후 감소 추세에 있거나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우리 나라는 연 평균 자살사망율이 6.43%에 달하고 있어서 OECD 국가 중 자살사망율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근래 조사된 바에 의하면 우리 나라 청소년들간에 자살에 대한 충동이 상당히 넓게 경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줍니다. 중고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전체 조사대상자 중 19.7%, 15세부터 24세까지 청소년과 젊은 사람에 있어서 자살은 청소년사망의 30%를 점유하고 두 번째 사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살에 대한 생각과 자살시도율을 조사했는데 자살에 대한 생각이 7.2%나 되며 주로 여학생들에게 많았고 학년이 높을수록 비율이 높아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살시도율은 4.4%로서 고학년이 저학년보다 많았으며 남녀 비율은 여학생이 약간 높든가 비슷하였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포기해야 할 만큼 극한의 외로움과 절망과 싸웠을 한 영혼이 초겨울 날씨 속에 싸늘하게 식어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6년 동안이나 부모의 별거로 힘들게 살아온 그가 견디어 온 시간이 결코 적지 않음을 생각하니 왜 죽어야 했냐고 다그치기 전에 연민이 앞섭니다.
자실을 옹호하거나 동정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그를 누가 벌할 수 있겠습니까? 신문 한 귀퉁이에는 그가 그린 인물화가 사진처럼 실감나게 실려 있어서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결코 범상한 솜씨가 아님을 생각하니 일찍 삶을 접은 화가 지망생이 다음 세상에서는 슬픔과 좌절, 배고픔 없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그를 보낸 누나의 아픔도, 그의 친구들까지도 이 겨울이 참 힘들 것입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15세의 중학생이니 곁에서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에 홀로서기의 힘듦을 혼자 감당하려다 무릎을 꿇어버린 그의 너무 슬픈 죽음 앞에 어른으로서, 교단에 서 있는 자로서 부끄럽고 미안해집니다.
몇 잎 남지 않은 늦가을의 나무들이 나목으로 서 있을 준비를 합니다. 이 세상에 헛되이 태어나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는 데, 스스로 버린 귀한 생명 앞에 한숨만 나옵니다.
A군의 슬픈 영혼이 편안히 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를 가르치며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일보다, 힘들 때 주저앉고 싶을 때 어떻게 자신을 추스려야 하는지를 먼저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생활고를 비관해서 죽은 중학생을 보며 학교는, 교육은 무엇을 해 주었는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한계 앞에서 절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