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현장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좋은 수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체 바퀴 돌 듯 반복되는 수업이 항시 재미있을 리도 만무하고, 매 시간을 색다르게 아이들에게 다가서기란 더 없이 어렵고 힘든 일 이다. 때론 한 시간의 수업이 열 시간의 수업보다 더 힘든 때가 있고, 혹은 연속적으로 몇 시간을 해도 한 시간 수업보다도 더 가뿐할 때가 있다.
이처럼 교사에게 수업이란 정말로 풀기 어려운 과제와도 같은 것이다. 항상 고민해도 고민한 만큼 보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이다. 가끔은 징글징글한(?) 교과서를 집어 던지고 정말로 내 삶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지식의 장을 아이들에게 안겨 줄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 빠져든다.
나는 잘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일주일에 6시간, 여기에 보충까지 합하면 8시간 정도를 한 반 수업에 들어가게 된다. 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 근무하다 보니 언어 영역 관련 교과를 부득이하게 두 세과목을 가르치게 된다. 일주일에 8시간 정도면 어떤 날은 하루에 3시간을 같은 반에 들어가는 날도 있다.
“선생님 싫어요. 차라리 우리 따라 다니는 귀신이 되세요.”
아이들의 장난기 섞인 볼멘 소리에 괜스레 주눅이 든다.
“너그들은 선생님이 수업 많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도 싫나. 선생님은 정말 좋은데.” “예이, 거짓말 마세요. 하루에 세 시간이나 보는데, 선생님은 지겹지도 않으세요.”
정말로 아이들이 지겨워 할 만도 하다. 교과서에 문제집으로 무장해서 아이들에게 아무리 재미있게 가르쳐 본 들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몇몇 아이들은 제외한 많은 아이들은 무거워진 눈꺼풀로 나를 억지스레 쳐다본다. 특히 기초 실력이 부족한 농어촌 학교의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정말로 고역 중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독서와 논술을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하겠다고!
문화적 혜택이라곤 오직 학교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다름 아닌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가득찬 도서관이야 말로 우리 아이들의 유일한 지식과 문화의 보물섬이다.
올해 본교는 도서관 사업비의 혜택으로 새로운 도서관을 꾸미게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터에 도서관을 리모델링 했고, 천 여권이 넘는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책 뿐만 아니라, 요즈음 유행하는 환타지 소설도 과감하게 구입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도서관이 갖추어졌다고, 책이 많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책을 대출하는 시간 말고는 아이들이 제대로 책을 읽을만한 시간적 여유를 학교에서는 거의 낼 수 없었다. 특히 수능을 대비해야 하는 고학년으로 올라갈 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정보화 시대에 독서와 논술은 필수라고 떠들어 대지만 정작 교육현장에서는 독서와 논술은 그저 교과서와 문제집이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득 아이들에게 책을 고르고 읽는 재미부터 붙여 줄 수 있는 기회부터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교과서를 집어 던지고 도서관으로 간다!
기본적인 어휘나 배경지식이 부족한 시골 아이들이라 교과서만으로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책읽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독서와 논술을 지도한다는 것은 거의 공염불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이런 답답함에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놔두고, 필기도구와 공책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향하게 했다.
“선생님 오늘 수업 안 해요. 갑자기 도서관에는 왜 가라고 하시는 거죠.” “시험 볼 거다.” “무슨 시험을 도서관에서 봐요.” “너희를 찾아가는 시험….” “에이, 선생님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아이들을 설득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무조건 도서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자, 다들 필기도구와 공책 가져왔지. 지금부터 공책에 너희를 찾아가는 작업을 남겨 놓는 시험을 볼 거다.” “선생님 어려워요. 무슨 말씀이에요. 뭘 찾아간다는 거에요. 뜬금없이….”
아이들은 나의 설명을 찬찬히 듣고는 그제서야 이해를 하는 듯 했다. 다들 도서관에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읽는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서 여기저기에서 책을 뽑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아이들을 무방비하게 놓아 두면 교사로서 직무유기의(?) 죄를 짓는 것일 게다.
이십여명 남짓한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동안 그들 옆에서 무슨 책을 고르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아, 너무 어렵지 않겠니. 그것 말고 다른 종류를 한 번 골라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저도 책 좀 골라 주세요. 도대체 뭘 읽어야 될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제각각 나에게 책을 골라 달라는 요청에서부터 자기가 원하는 책이 장서 어디에 꽂혀 있는가하는 문제까지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책을 다 고른 아이들이 자신들이 고른 책이 어떤 종류이고, 어떤 방향으로 읽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게 생각하던 아이들이 자유스럽게 책을 찾고 그리고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점차 책읽는 재미에 몰입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자유 뒤에는 책임이 따라야 하듯이, 자신의 책임하에 선택한 책에 대한 내용은 말하기나 짓기 등을 통해 수행평가로 연결하였다. 아이들은 수행평가는 뒤로 하고 제각각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 도서관에서 자유스럽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는 것 만으로도 기쁘하는 것 같았다. 물론 수업이라는 답답한 틀에서 벗어났다는 것 자체에 더 우선하겠지만.
좋은 수업이란 뭘까?
처음에는 수업이라는 답답한 분위기를 벗어나 좀 더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책을 읽게 하자는 의도로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교사인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의 책선정, 읽기 방법, 낱말 풀이, 구문 독해, 감상문 쓰기 등 여기저기에서 밀려드는 질문 때문에 한 시간이 정말로 파김치가 될 정도였다.
문득 ‘한 시간 쥐죽은 듯 조용히 교사인 내가 하는 말을 그냥 받아 적는 아이들보다 조금은 산만하고 자유스럽지만 유치한 질문이라도 내게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조금은 성공한 수업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사석에서 한 선배 선생님의 “가장 훌륭한 수업은 교사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수업이다”라는 말이 담고 있는 진정한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