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퇴근한 시간이었지만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로 또한번 등교시간 같은 분위기였다. 바로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미술영재 선발' 2차 시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미 1차선발을 서류전형으로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60여명의 학생만이 2차 실기 시험에 응시하였다.
15일 오후 서울 대방중학교(교장 이선희)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술영재교육 대상자 선발 시험이 실시되는 장소이면서 실제로 5월부터 미술영재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60여명의 학생을 20명씩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실기시험을 실시하게 되었다. 즉 문제를 보고 문제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답안은 그림으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미 미술에 상당한 재능을 보인 학생들이었지만 워낙에 문제의 수준이 높았던 터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모습들이었다. 1문제를 출제했지만 고사시간은 무려 4시간 30분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는 그 문제의 참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웠지만 답안 작성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은 더욱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문제를 받아들고 생각하는데 보통 10여분 이상을 보낸 학생들이 서서히 그림 그리기 작업에 돌입하였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시험시작 3시간여가 지났을 무렵, 고사시작 후 3시간 경과후에는 퇴실을 할 수 있다는 고사규정에 따라 '지금부터는 답안 작성을 모두 한 학생은 퇴실해도 됩니다. 문제지와 답안지(사실은 답안지가 그림을 그린 켄트지이다.)를 제출하고 퇴실하도록 하십시오.'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제출하고 퇴실하느라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장내가 다시 조용해지고 정리가 되었을 무렵 한 학생(남학생)이 아직 답안을 제출하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직 답안을 작성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모든 학생이 나가고 혼자 남은 것이 안쓰러워서, '어떻게 아직도 답안을 작성하고 있니? 문제가 어려워서 그런 모양이구나'라고 했더니, '워낙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제가 나와서 포기할까 하다가 그래도 답안은 작성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최선을 다하거라.'
'우리 미술선생님 그랬어요.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나오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모두 해결이 가능하다고요.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사나이가 할 일이 아니다. 혹시 어려운 문제가 나오더라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된다.'라고요. '그래서 그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예' 이렇게 대답하고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교사들의 한마디가 학생들의 인생을 바꿀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생에게 그 학교의 미술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가정할때 그 학생이 그토록 열심히 마지막까지, 그것도 다른 학생들이 모두 퇴실한 후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교의 미술선생님 말씀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도 훌륭한 학생이기도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한 미술 선생님은 더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라면 항상 학생들에게 희망적이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교사의 무심한 한 마디가 학생의 장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학생은 거의 시간이 다 되어서야 답안을 작성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저때문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답안작성 만족스럽게 했어요.' '그래 꼭 합격해서 3차시험 때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