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놀뫼 대둔산자락 양지뜸입니다. 출신이 시골뜨기라 그런지 '봄날'하면 가장 먼저 '실바람 장단에 살랑살랑 어깨춤을 추는 청보리밭'이 떠오릅니다.
여리디 여린 새싹으로 참으로 용케도(어떤 의미에서는 기적적으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보리, 그들 앞으로 봄바람이 불어오자 물 만난 고기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랍니다. 정말 보리 곁에서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보리 크는 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청보리밭에서 실려 오는 샛바람에 몸을 맡기면, 금방이라도 노고지리가 된 것처럼 한껏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보리피리를 입에 물고 목동이라도 되는 양 봄을 노래하기도 하고…. 눈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보리밭 이곳저곳을 천방지축 뛰어다녀 보기도 하고….
학교 갔다 오는 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보리밭 옆에 둥그렇게 앉아, 익어가는 보리이삭을 모닥불에 올려놓고 호호 불어가며 두 손바닥으로 싹싹 비비면 '초록빛 보리알'만 빛납니다.
그것을 한 움큼씩 입에 털어 넣고 '이게 바로 봄을 씹는 맛'이라며 마냥 좋아했던, 얼굴과 온몸이 까매지는 줄도 모르고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동심어린 그 봄날의 추억….
제가 어린시절을 보낸 70년대까지만 해도 논과 밭에 보리를 많이 심었습니다. 봄이면 천지가 보리밭과 밀밭이었습니다. 보리와 밀이라도 많이 심어 배고픔을 면하자는 뜻이었을까요? 그래 그런지 쌀밥은 실컷 먹지 못했어도, 보리밥과 국수, 수제비, 고구마, 감자 덕분에 배고픔은 모르고 자랐습니다.
어머니 밥 짓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면, 보리쌀을 먼저 박박 씻어 한번 삶아낸 다음, 다시 가마솥에 안칩니다. 솥 한쪽 구석에 한 주먹거리의 쌀을 씻어 넣고 불을 지핍니다. 이윽고 밥이 다 되고 뜸이 들면 어머니는 주걱을 들고 밥을 풉니다.
그 때 우리 집 쌀밥과 보리밥의 비율을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할아버지 밥 : 쌀밥 98%, 할머니 밥 : 70%, 아버지 밥 : 50%, 반대로 아들들 밥 : 보리밥 70%, 딸들과 어머니 밥 99%) 위아래와 남존여비가 확실했지요.
어린 저는 쌀밥이 먹고 싶어 할아버지 밥상 물리기만 기다렸고, 손자를 생각해서인지 할아버지는 꼭 서너 숟갈 밥을 남겨주셨습니다.
봄이면 삘기를 뽑아 먹고 진달래꽃을 먹고 송홧가루를 먹고 찔레 등 새순을 먹고 감꽃도 먹고 아카시아꽃도 먹고…. 달리 군것질할 것이 없었던 시골아이들에게 자연은 먹을 것 천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는 어린시절이 가난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행복했던 낭만으로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머니 어렸을 때는 그야말로 그것들을 정말로 배가 고파서 먹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하루는 오빠와 함께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 안에 있는 보리밥을 훔쳐 먹다 들킨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어려웠던 시절, '조반석죽'이라는 말처럼 어느 집이나 아침에는 혼식 밥을 먹고, 저녁에는 죽을 먹고, 점심은 굶을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겨우내 저장해 둔 곡식은 바닥을 드러내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먹을 것을 찾아 온 산과 들을 찾아 헤매야 했던 음력 4~5월 춘궁기, 일명 보릿고개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고개가 보릿고개요, 고개 중에 제일 높은 고개가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맥령(麥嶺)이라고도 했던 보릿고개, 그만큼 먹고살기가 어려웠다는 뜻이겠지요.
옛날에 자식 복이 많아 아들을 다섯이나 둔 양반이 있었단다. 아들이 다섯이니 며느리도 당연 다섯을 두었겠지. 이 양반은 다섯 며느리 중 어느 며느리가 가장 지혜로운지 분간하지 못해 걱정을 하던 차에 "음, 그렇지, 시험을 해보면 알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양반은 며느리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단다.
"얘들아, 너희들은 꽃 중에서 어느 꽃이 제일 고우냐?"
첫째 며느리가 대답을 했단다.
"모란꽃이 제일 곱습니다."
이어 둘째 며느리는 국화꽃, 셋째 며느리는 복숭아꽃, 넷째 며느리는 함박꽃이라 대답했고.
"막내 아가, 너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시아버지의 물음에 막내며느리는 목화꽃이라 대답했단다.
"허허, 어찌 목화꽃이 고우냐? 목화란 본디 향기도 없고 꽃도 크지 않으며 볼품이 없는 게 아니더냐?"
시아버지의 말에 막내며느리는 또렷하게 대답을 했단다.
"본디 목화꽃이 있어야 실을 뽑음이며 실이 있어야 천을 만들어 옷을 지음이니 당연 목화가 제일인가 하옵니다."
이 말에 양반은 고개를 끄덕였단다.
"그럼 두 번째로 묻겠다. 고개 중에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인고?"
시아버지의 말에 첫째 며느리부터 넷째 며느리까지는 진짜 있는 문경새재니, 추풍령 고개 등을 말했으나 막내며느리는 보릿고개라 대답했단다. 보릿고개란 얼마 안 되는 보리 몇 줌을 가지고 새 보리가 나올 때까지 연명해야 하는 시기로 아주 어려움이 많음을 이름이니 당연 보릿고개가 제일 힘든 높은 고개였던 것이지.
이어서 양반은 세 번째 시험을 내었단다.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새는 무엇인고?"
이 말에도 첫째에서 넷째까지는 진짜 있는 새를 들었으나 막내며느리만은 먹새라 대답했단다. 먹새란 아무리 양식이 많아도 놀고먹으면 없어지므로 먹는 입이 제일 크다는 뜻이지.
"막내야, 네가 가장 지혜가 뛰어나구나."
어린시절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보릿고개 이야기…. 물론 이 이야기는 가난한 시절을 살아가던 한 여인의 기지와 재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혹독한 가난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기에 웃다가도 금방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어머니도, 묵묵히 듣기만 하던 나도, '얼마나 가난했으면….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어느새 눈가에 피어나는 안개꽃을, 소리 없이 떨어지는 그 꽃잎들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