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스승의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12일) 종례하러 들어갔더니, 반 아이들이 꽃 한 송이를 주면서(반장 아이가 제 가슴에 달아주려는 것을 제가 괜찮다며 손으로 받았습니다)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해요!" 라고 합창을 하더군요.
전혀 예상 못했던 일(저희 학교는 현재 중간고사 기간 중)이라 깜짝 놀랐고, 또한 “축하?” 축하라는 말이 참으로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스승의 날 아무 행사도 하지 말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학교 문까지 걸어 잠그는 마당에 ‘축하’라니, 마치 쓰면 안 되는 금기어라도 들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말 올해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스승의 날을 맞이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요? 미국은 우리처럼 5월에, 중국은 9월에, 그리고 100여개국이 10월에(10월 5일이 유네스코가 선포한 세계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을 기념일로 정해 스승을 기리고 드높이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나라들 가운데 스승의 날을 휴업일로 정해 교문까지 닫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다른 나라도 아니고 ‘군사부일체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통탄할 일이......” 윤 아무개(50) 학부모는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러워 차마 입을 다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스승의 날에 학교 문을 닫아걸어야 할 정도로 교단이 불신을 받고 교사가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부 언론을 탓하기 이전에 이 지경까지 이른데 대해 이 땅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사들부터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고, 또한 내 아이만 잘 봐 달라며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일부 학부모들도 자숙해야 할 것입니다.
알고 보면 스승의 날의 시작은 참으로 뜻깊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나라 스승의 날의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63년 충남 강경고등학교의 윤석란(당시 17세, 청소년 적십자단) 학생이 투병 중인 한 선생님을 방문해왔습니다. 윤양이 같은 단원들에게 함께 하기를 제안하자 JRC(RCY의 옛 명칭)학생들이 흔쾌히 받아들여 병문안은 물론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퇴직한 선생님을 찾아뵙는 행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충남JRC학생협의회는 강경고교 학생들의 뜻있는 행사를 충남 전역에서 함께 하기로 결정했고, 9월 21일을 충남 지역 ‘은사의 날’로 정하고 63년에 첫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 행사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 모아져, 그 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12차 중앙학생협의회에서 참석학생들의 열렬한 찬성 속에 이 안이 통과됐습니다.
그리고 2년 뒤 1965년 4월 23일에 열렸던 JRC중앙학생협의회에서는 민족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의 탄신일인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고, 이 행사를 JRC단원뿐 아니라 전국 학생들이 동참해줄 것을 권유하는 권고문을 전국 학교에 보냈는데, 이를 계기로 스승의 날은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1965년 5월 15일 제1회 스승의 날 행사에서는 서울시내 125개 중고교 1만 3000명의 JRC 단원들이 아침 일찍 등교해 교문 앞에 서서 선생님들에게 ‘스승의 날, 선생님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리본이 달린 장미꽃을 꽂아 주었다고 합니다.
스승의 날인지 모르고 학교에 나온 선생님들은 갑작스럽게 장미꽃을 받고 어리둥절했지만 적십자 단원들에게 설명을 듣고 감격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날 행사를 계기로 전국에서는 스승의 노고에 감사하는 행사가 잇달아 열렸는데, ‘선생님 고맙습니다’ 라는 리본 달기 행사가 열렸고 경남과 충남지역에서는 현직 선생님 중 병상에 계신 선생님이나 퇴직하신 선생님을 찾아 위문하는 행사를 했으며, 전남 지역에서는 선생님 구두 닦기, 교무실 청소하기 등의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스승의 날의 발원지인 충남 강경고등학교에서는 2000년 스승의 날 기념탑을 세우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글쓰기 전국 백일장 대회를 매년 주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못내 안타까운 것은 이런 스승의 날의 발원지인 강경고등학교조차도 올해 스승의 날인 15일에는 휴업한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스승의 날이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반 녀석들이 이렇게 요즘 돌아가는 정황을 알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인지 자꾸만 "선생님 축하해요!" 그러기에 잠자코 축하받을 분위기가 아니다 싶어
“얘들아 됐다 선생님한테 신경 쓰지 말고 시험공부나 열심히 하렴~” 그렇게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저의 얘기에 아랑곳없이 스승의 노래까지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이라는 낱말 앞에 서면 누구나 신(神) 앞에 선 것처럼 옷깃이 여미어집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제가 스승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런 자격이 있을까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 저는 이 노래를 듣기만 하면 가슴이 울컥 합니다. 오늘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참 스승은 못 되어도 "좋은 교사"가 되겠노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스승의 날에 제가 제자들에게 진심으로 받고 싶은 것은 "존경"이요, 제가 제자들에게 참으로 주고 싶은 것은 가이없는 "사랑"입니다. 인류의 큰 스승이신 그리스도처럼 더욱 낮은 자세로 사랑을 주고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다소 부족하더라도 예쁘게 봐주시고, 혹시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엄하게 꾸짖어 주시기 바랍니다.
“학교가 살아야 대한민국이 살고, 학교가 신나야 대한민국도 신바람이 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