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대회가 열리는 아침. 눈을 뜨자 5월의 싱그러운 햇살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행사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날씨가 흐려 내심 걱정을 많이 하였다.
양손에 응원도구를 들고 등교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마냥 밝아 보이기까지 했다.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으로 인해 지쳐있는 아이들이기에 오늘 하루만큼은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훨훨 털어 버리기를 바랬다.
오전 9시 30분. 교감선생님의 개회선언과 교장선생님의 환영사에 이어 드디어 춘계체육대회의 막이 올랐다. 그리고 꼭짓점 댄스로 시작하여 각 팀의 응원전이 식전행사로 있었다. 응원전부터 체육 대회의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체육대회에는 여러 종목(계주, 줄다리기, 줄넘기, 놋다리밟기, 농구, 여자씨름, 율동, 마라톤 등)들이 채택되었는데 예년에 비해 달라진 점은 사제간의 종목(단체줄넘기, 놋다리밟기, 사제 계주 등)이 늘어난 것이었다. 이는 체육 대회를 통해 무너져 가는 사제간의 정을 돈독히 하라는 교장선생님의 뜻인 것 같았다.
그리고 예년에는 청·백으로 나누어서 단체전으로 우승을 가렸던 것을 올해에는 학년별 반별대항으로 시합이 치러져 학급의 결속을 다지는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평소 학급 에 소홀히 했던 학생들도 오늘만큼은 한마음으로 학급이 우승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기 학급의 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목청껏 자신의 학급을 위해 응원을 하였으며 경기에 진 아이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갈채를 보내 주었다.
특히 줄다리기의 경우, 양 팀이 팽팽한 가운데 접전을 이루고 있을 때는 숨죽이며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기도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선에서의 한판이 승패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꼭 이기려는 아이들의 마음이 줄을 더욱 팽팽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여학생 씨름은 정말이지 볼 만한 시합이었다. 체중에 관계없이 추첨으로 상대방이 정해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자신보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적을 만나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유리한 것은 아니지만. 안간힘을 쓰며 상대방을 쓰러뜨리려는 아이들의 얼굴 표정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진행된 1학년율동경연대회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사실 1학년 새내기들은 일주일 전부터 체육시간을 이용하여 이 대회를 준비해 왔다. 아이들은 각 반의 특색에 맞게 율동과 의상을 준비하여 연습해 왔다. 율동을 선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천진난만하기까지 했다. 연습기간이 일주일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율동을 잘 소화하였다. 그리고 율동에는 각 반마다의 독특한 색이 묻어 나왔다.
선생님과 함께 한 단체 줄넘기는 정말이지 학급의 단합을 엿 볼 수 있는 경기였다. 줄을 돌리는 사람과 넘는 사람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도저히 많은 횟수를 할 수 없다. 기회가 두 번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모두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이 경기에서 한 학급이 무려 47회를 하여 다른 학급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옛 민속놀이인 재현하여 실시한 '놋다리밟기' 경기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참가한 모든 학급들이 이 경기를 이기기 위해 맹훈련을 하였다고 했다. 이유인즉, 이 경기에 걸린 상품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제와 함께 한 경기였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득 아이들과 '놋다리밟기' 연습을 하면서 웃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선생님, 어찌 제자가 선생님의 등을 밟고 지나갈 수 있겠습니까?"
"아니올시다. 제자를 위한 일이라면 내 무엇을 못하겠소. 개의치 마시고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체육대회 마지막 행사는 사제계주였다. 경기 방식은 홀수와 짝수 학급 두 팀으로 나누어서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손을 잡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경기 내내 엎치락뒤치락 할 때마다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오후 4시. 폐회식이 거행되었다. 시원한 봄바람이 아이들과 선생님의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가 하나가 된 날이었다. 연일 불거져 나오는 교육현장에 대한 쓴 소리가 체육대회 내내 선생님과 아이들이 만들어 낸 함성에 영원히 사라지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