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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 지금이라도 가겠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장 하기싫어하고, 귀찮아 하는 일은 단연 청소일 것이다. 물론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몇몇 아이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더라도 대체로 보면 청소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꺼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사정때문에 화장실청소를 용역으로 넘기는 학교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반에 호현이라는 여학생이 있다. 공부도 잘하고 중학교 2학년 치고는 키도 큰 편이다. 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주변에 친구들이 많은 편이다. 선생님에게도 항상 예의바르게 행동한다. 평소의 모습으로는 모범생 그 자체이다. 그런데 이녀석이 얼마전에 담임교사인 리포터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이 발생했다.

그 당시에는 기말고사를 2주일여 앞둔 시점이었기에 수행평가 과제를 하느라고 모두 바쁜 시기였다. 그날도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종례를 마치고 청소지도를 하고 있었다. 날도 덥고 짜증스러운 교실 분위기였다. 한참이 지난다음에 교실을 둘러보니 당연히 있어야할 녀석이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교실 어디에도 그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청소하던 아이에게 물었더니 가방가지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럴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해 보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청소가 끝났다. 그런데도 녀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있었겠거니 하고 교무실로 돌아와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래도 응답이 없었다. 이번에는 전화를 직접 걸었다. 역시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가장 친한 우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둘 사이의 관계를 볼때 분명히 같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도 둘 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호현이에게 선생님 실망했다. 평소에 그런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두번 더 보냈다. 그래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다른 일을 하다보니 그 일을 잊고 말았다. 그런데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휴대폰의 진동음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전화번호를 보니 호현이의 전화였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선생님 저 호현이 인데요. 지금이라도 학교에 가겠습니다. 가서 청소할께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어딘데...' '지금 집에 막 들어왔어요. 우선이하고 수행평가 때문에 어디를 다녀왔습니다. 전화를 진동으로 놓아서 그렇게 선생님께서 메시지 보내고 전화하신줄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랬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늦었으니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래도 자꾸 학교에 가서 청소를 하겠다고 했다. 간신히 설득시킨 후 전화를 끊었다. 그 다음날은 호현이게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더 이상 뭐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그 주는 흘러갔다.

다음주 월요일, 종례를 마치고 역시 청소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호현이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너는 지난주에 청소했는데, 왜 또 청소하니? 누구하고 청소 바꿨니?' '선생님 그게 아니고요. 지난주에 제가 한번 청소를 안하고 도망갔으니까 반성하는 뜻에서 이번주 청소 하겠습니다.'

자기가 그날(청소안하고 가던날), 청소당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선이하고 약속을 했고, 수행평가도 걱정되어서 그냥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화를 못받은 것은 몰라서 못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청소를 자청해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청소를 안하고 갔던 그 다음날에 선생님이 아무말도 하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일주일 동안 청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뭔가 교사로써 깨달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만일 그 다음날에 전날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꾸중을 했었다면 그렇게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아이들의 속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시 아이들은 꾸중보다는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더욱더 우리반 아이들에게 신경 쓰면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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