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관에서 '독서캠프'를 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고 처음에는 무척 당황이 되더군요. 독서캠프는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토요일 오후 네 시. 지락 독서동아리 회원들이 음식이며 이불보따리를 잔뜩 짊어지고 하나둘씩 학습지원센터에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들 얼굴 또한 교사인 저와 마찬가지로 호기심과 걱정이 교차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네 시 반쯤 되자 우리 지락 동아리회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네 분의 선생님들은 우선 아이들을 송파수련관으로 안내를 한뒤 배구경기를 시켰습니다. 목적은 간단하게 몸을 풀게 하는 동시에 평소 어렵게만 느꼈던 선생님들과의 운동 경기를 통해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하자는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배구경기를 마치자 어느새 저녁 여섯 시가 되었더군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여야 했습니다. 우선 각자 준비해 온 음식을 지원센터 옆 잔디밭에 펼쳐놓게 하고 요리를 하도록 했습니다. 평소 엄마가 해 주던 음식만 받아먹던 아이들인지라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더군요. 그런데 개중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아이들이 있어 그 아이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저녁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휴대용 가스렌지에 삼겹살을 굽고 밥을 해서 즉석에서 퍼먹는 맛이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황급히 지붕이 있는 도복도로 자리를 옮겼야 했습니다. 도복도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맛있게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삼겹살만 먹으니 느끼하다고 하기에 호주머니를 털어 음료수와 김치 등을 잔뜩 사다주었습니다.
저녁 아홉시.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독서 토론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는 리포터인 제가 보기로 했습니다. 선정 도서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을 가지고 밤 열한 시까지 토론을 하기로 했습니다. 토론의 주제는 '완전한 사랑'으로 정했습니다. 저는 우선 서두에서 말하길,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것도 사람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퐁스 도데의 '별'과 관련지어 말해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일순 긴장해서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고 분위기가 편안해 지자 아이들은 서로 먼저 말을 하겠다고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평소 어리다고만 생각해 왔던 아이들이었는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랑에 관한 철학들이 매우 깊더군요.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것은 의외의 성과였습니다.
이어 다른 선생님들께서 당신들의 사랑 경험담과 좋은 명언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토론회가 알차고 재미있었습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자 2학년과 1학년 사이에 막혀있던 미묘한 벽도 어느새 깨끗하게 허물어져 토론회가 더욱 자유롭고 유익해지더군요.
토론회를 마친 다음 우리들은 '별'을 주제로 연극을 하기도 하고 소설의 끝 부분을 이어 쓰는 릴레이 소설 쓰기도 했습니다. 어디에 그런 기발한 생각들이 숨어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참신한 내용들을 들으며 우리 선생님들도 배꼽을 잡고 웃었답니다. 스테파테트와 목동으로 분장한 아이들이 등장하여 '별'을 현대적 의미로 각색하여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즉석에서 만든 연극인데도 아주 독특하고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런 연극은 학교 축제 때 올려도 참 인기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는 밤 12시가 훌쩍 지나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연극과 릴레이 소설 쓰기가 끝나자 여자 선생님 한 분이 풍선을 사 오셔서 풍선게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풍선을 양손에 잡고 있다가 갑자기 상대방을 공격하여 상대방의 풍선을 먼저 터트리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인데, 서로가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하더군요. 평소에는 몰랐던 아이들의 성격과 행동이 드러나 가끔씩은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실컷 웃기도 했습니다.
평소 동아리 활동을 할 때에는 각자 맡은 책임만 마치고 돌아가다 보니 사실 회원들 간의 대화와 인간적 교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이렇게 모든 동아리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밤을 새우며 음식도 해 먹고, 토론도 하고, 심야 영화도 감상하다 보니 선후배와의 거리감도 좁혀지고 또 선생님들과 학생들간의 벽도 허물어져 너무 좋더군요. 7월의 한여름 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웠지만 누구 하나 피곤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다시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그때에는 더 기쁘게 참여할 것이고 좀더 재밌는 모습을 보여준다면서요. 개소식 때에는 교감 선생님께서 오셨고, 또 오늘 아침 퇴소식 때에는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방문하셔서 격려의 말씀도 해주시고 기념촬영도 해 주셔서 아이들은 아주 신이 난 표정들이었습니다.
이번 독서캠프를 계기로 아이들은 자기들의 활동에 강한 자부심을 갖는 눈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 같지만 이런 시도야말로 진정한 사제동행의 교육이 아닌가 생각이 되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