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압력을 거부해 경질됨으로써 ‘비굴하지 않고 기개 있는 공무원’으로 칭송받는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이 세간에 화제다. 우리는 그가 정부에 도입한 ‘외부 공모제’ 실상에 대한 충격적 폭로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현 정부 들어 선출한 공모 기관장 중 상당수는 ‘급(자격)’이 안 되는 사람, 해당 업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낙하산 인사를 공모인 것처럼 포장하여 끼워 넣은 것"이라고 밝혔다.
애당초 참여정부가 장관의 정책보좌관이나 정부산하 기관장에 ‘외부 공모제’를 도입한 것은 현행 연공서열 위주의 승진제도를 보완하고 능력 있는 외부인재 발굴을 통하여 공직사회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도였다. 게다가 노대통령은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유 전 차관이 폭로했듯이 ‘공모 기관장’은 본래 의도와는 달리 자격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외부인을 밀어 넣는 낙하산 인사의 자리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교육계가 이 꼴이다. 교육부는 이번에 사립 대안학교나 자율학교에만 적용하던 교장 자격증 미소지자를 공립 특성화고교에도 처음으로 임용한다. 그들은 이달 한달 동안 연수를 받은 후 9월1일자로 자격 없이 정식 교장이 된다. 교육부 발표대로 그들은 “교장 자격증은 없지만 해당 분야 국가자격증을 소지하고, 대학에도 출강하는 등 전문성과 경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어 교장이 되는 것이다. 이제 누구도 한달 연수만 받으면 교장이 될 수 있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최근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가 내년부터 교단 경력 15년 이상인 평교사, 대학 교수나 최고경영자(CEO) 출신 교장 자격증 없는 외부 경력자가 교장 공모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교원 임용ㆍ승진 개선안'을 확정했다. 교장승진제도 개혁을 빌미로 ‘초빙·공모제’로 포장된 교장 무자격 외부인사의 교장직 개방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시범운영 학교의 초빙ㆍ공모 교장에게는 교사 50%를 초빙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각종 행정 및 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등 학교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기로 했다. 행정 및 재정적 지원에 이처럼 파격적인 이유는 이른바 시범운영 결과를 ‘성공적’으로 유도 내지는 조작하여 이를 모든 학교에 점차 일반화하려는 음모아닌가. 또한 교사 초빙 등 교장의 인사권 강화는 학부모의 입맛에 맞는 입시위주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교육과정은 물론 학교 운영 전반의 근간을 흔들 우려가 높다.
‘초빙·공모제’로 포장된 교장 무자격 외부인사의 교장직 개방은 학교의 정치장화와 교육전문성 약화는 물론 교직사회 전체에 극심한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악법으로 별질 전락할 것이다. 학교 역시 본래 의도와는 달리 갈 곳 없는 교육부행정직이나 대학교수, CEO , 하물며 학원원장까지 이른바 '능력 있는 인재'을 빙자하여 ‘급’이 안 되는 사람, 교육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을 앉히는 낙하산 인사의 자리로 변질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사건은 우리 교육계에도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자격을 갖추지 못한 낙하산 인사를 기관장에 임용하려는 것을 소신 있게 거부한 것처럼, 우리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무자격자를 교장에 임용함으로써 초․중등 교육을 무시하는 발상을 전면 거부할 수 있는 교육수장을 바라는 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