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말 학회에 참여하면서, 마침 학회가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개최되므로 학회일정을 전후로 하여 며칠 여유를 가지고 그 유명한 디즈니랜드를 보기로 하였다.
디즈니랜드를 구경하면서, 또 미국의 10대 건축물을 TV에서 보면서 산업사회 정점의 특징, 전문화, 대량화, 표준화, 거대화를 몸으로 체험하였다. 감탄이 나왔다. 와~~~ 미국이라는 나라가 왜 그렇게 잘난체를 하는지 이해를 하였고, 인정도 하였다. 인류의 발달사에 있어서 한 시대의 주인공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저 거대함을 유지하려면 건축하는 일보다 더 힘들고, 더 비용이 들겠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한국에서도 디즈니랜드와 비슷한 곳이 더러 있다. 더욱이 새로 짓는 곳이 있다는 말도 들린다. 미국의 디즈니랜드를 보면서 하드웨어는 그대로 두더라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즉 개인적인 체험경험을, 기차에 타고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닌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특히 한국은 미국처럼 돈도 많이 들이고, 사람들도 많이 고용하고 할 수 없으므로 더욱 그러하겠다.
한 영화사의 체험관에서는 상영된 영화의 세트장만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 모형이 나와 주요장면을 실감나게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관광 안내자들이 즉석 연기자가 되어 총을 쏘며 연기를 하였다. 우주속의 한 기지를 연출한 곳에서는 비위를 거스르는 냄새가 안개 스멀스멀 피어오르듯 분출되는 것도 같았고, 안개비가 내리기도 했으며, 먼지 뽀얀 고대 이집트 무덤 속에서 미이라들이 이리저리 출렁대는 거미줄 사이로 기괴하게 움직이고, 거대한 석상 뒤에서 불이 번쩍하더니 대기하고 있던 연기자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관객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나는 여러번 깜짝깜짝 놀라며 감탄을 하였다. 명성에 걸맞다. 그래도 관객은 주어진 자리에 가만히 앉아 더러 놀래서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나 칠 뿐 참여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
많은 것을 한 번에 보여주려 하기보다 취향에 따라 한두 곳만 선정해서 심도있게 체험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예를 들면 ‘메어리포핀즈’나 한국의 경우라면 드라마 ‘대장금’을 택하여 영화제작 중의 에피소드 들어보기, 당시의 의상입어보기나 간단한 음식 만들어 보기나 음식먹어보기, 손가락을 ‘탁’치면 방 안에 이리저리 어지럽게 놓여진 옷들이 착착 개어져 서랍속에 쏙 들어가 정리되게 하거나, 아이들이 양볼이 장밋빛이고 양산을 쓴 가정교사 선생님을 모셔왔으면 좋겠다고 종이에 적어주었더니 아버지가 화를 내며 찢어서 페치카에 넣은 종이조각들이 하늘로 날아가 양산을 쓰고 구름위에 앉아있던 메어리포핀즈에게 전달되던 장면을 메어리포핀즈가 되어 천장에 구름 모형위에 양산을 들고 앉아 받아보게 하던지, 돌돌말린 줄자를 관객이 선택하고 키만큼 올리면 키가 몇 cm라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장난을 좋아하고 청소하기를 싫어하나 남을 잘 도와주고 산수를 좋아함’과 같은 점술같은 이야기가 써있어 들려주든지, 굴뚝청소부들과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함께 춤을 추어보게 하든지 등등. 이런 심층 체험을 하려면 참가인 예약을 받아 인원수를 제한하고, 기물 파손이나 위험에 대한 주의사항 학습을 받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관은 학회의 주선에 의해 학회에 참석한 사람들만을 위해 저녁에 문을 열었었다. 그날 저녁은 비가 왔었다. 주최측에서 하얀 우의를 하나씩 나누어 주어서 참가자들이 우의를 입고 이리저리 볼거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가로등이 덜 비추는 곳에서는 흰옷무리들이 유령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귀신이다’하면서 매리앤과 깔깔거리면서 걷다가 유령이 나온다는 ‘귀신의 집’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오르내려 엉덩이가 공중에 떠있는 채로 몇 초간 있단다. 비에 젖은 우의를 손에 들고 귀신의 집에 들어갔더니 키가 엄청 크고, 밀납같은 얼굴의 안내원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안내의 말을 전하고 앞장섰다. 갑자기 실내의 불이 나가서 나도 모르게 ‘아악~~ 악’ 소리를 치며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더니 앞에 커다란 장벽이 있었다. 주먹으로 쳤더니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났다. 장벽은 안내원이었고 내가 하도 긴장하고 있었더니 함께 관람하던 관객들이 나만 놓고 뒤로 물러섰단다. 예상한 대로 되었다고 매리앤이 박장대소를 하였다. 영화관이라고 관객들까지 즉석 연기를 하다니.....쩝. 조금 무안해졌으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도 공연히 집기 하나하나 괴기서린 듯이 보였으로 사람들이 작은 소리도 깜짝깜짝 놀라며 드디어 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2~3명용 의자가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 두 줄 놓여져 있었다. 나는 한 손에 우의를 구겨서 접어 들고, 나머지 한 손은 의자를 붙들고 매리앤과 나란히 앉았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였다. 엘리베이터가 두 번 정도 오르내리는데 올라가서는 공중에 1만년은 떠 있는 것 같았다. 몇 초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의아악’하는 소리가 났다. 아래로 내려와서 문이 열렸을 때 내손에는 우의가 없었다. 나중에 매리앤은 빠른 속도에 정신이 없는 데 무엇인가 옆으로 스멀스멀 다가와서 몸에 척척 걸치므로 ‘어머나, 무엇이 내게로 와요, Something comes to me’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말해주었다. 우리들은 지금도 몇 번이고 이때의 일을 말하며 웃고 또 웃는다.
디즈니랜드의 식물원도 아주 대단하였다.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스르르 들어서면 각종 식물들과 야채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역시 그저 감탄이나 하고 있을 뿐이다. 개개의 작품들은 다 훌륭하지만 줄을 지어 구경만 하다보면 모두 그게 그것처럼 보인다. 식물원에는 식물뿐 아니라 곤충과 벌레도 함께 살고, 이들을 돌보는 인간들도 함께 살고 있다. 보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 노력하는 식물학자, 벌레학자, 관리자들과의 직접 만남을 통해 식물과 인간과의 길고 힘든 싸움의 역사를 들어보는 일-식물 본래의 모습과 교배를 통해 달라진 식물의 열매, 뿌리, 잎의 모습, 씨앗연구, 토양연구, 비료개발의 역사, 식물에 살고 있는 벌레 연구, 식물원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의 재미난 혹은 힘들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보고 체험하는 일, 도구를 사용해보는 일도 구경과 교육을 겸하는 일이 될 것 같다.
벌레들이 사는 곳에 유리로 길을 내어 벌레들은 밖에서 유리창을 기어오르던가 놀던가 하고 아이들은 유리창 안쪽 길에서 돋보기를 눈에 대고 벌레를 관찰할 수 있겠다. 벌레방에서는 계절을 달리하여 방문한다면 번데기로 성충으로 자라는 벌레의 한살이를 볼 수도 있겠다. 예전에 한 방에 가득놓인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소리가 꽤 크다고 어떤 아줌마가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벌레들의 소리를 들려주면 더 좋겠지. 미국은 음향기기가 상당히 좋던데 한국도 그렇겠지. 냄새는? 고약하겠지만 참을만 하지 않을까? 누에가 만든 고치에서 실을 내는 활동, 만들어진 실로 지어진 옷이나 등등도 식물원에서 하면 안된다는 법도 없다. 그러자면 식물원이라는 이름이 바꾸어져야 하겠다. ‘식물과 인간館’
플로리다 호텔에서 길을 가다보니 덩굴나무 아래로 그늘을 만들어 놓은 곳에 애벌레들이 엄청 많이 있었다. 사람의 발에 밟혀죽은 벌레들도 아주 많았다. 나도 의도한 바는 없었지만 열 마리 넘게 밟았을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대전에서 논이었던 곳에 아파트를 지으니 3년동안 논벌레들이 아파트 유리창위로 기어올라왔단다. 3년동안 어마어마한 약을 뿌렸더니 그 후엔 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토록 생명력이 강한 벌레들을 그토록 간단하게 밟아 죽이다니 ......인간보다 1/1000 정도의 크기와 몸무게를 지녔을 것 같은 이 벌레를 죽인 그 약의 독한 기운이 인간에게도 해롭지 않았을까? 1000배 만큼 뿌리면 인간도 다시는 봄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카슨의 ‘침묵의 봄’이 생각난다. 어찌되었거나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인간’인데 의도는 없었을지라도 내 무심함에 밟혀죽었을 벌레들에게 늦게나마 얍삽한 哀悼의 念이라도 올린다. ‘벌레야, 다음 세상에서는 우아한 인간으로 태어나거라’.
그 밖에 세계 여러 곳에 사는 동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재현해 놓은 동물의 왕국, 여러 나라의 문물을 짧은 시간 내에 접할 수 있게 각 국의 특성이 살아있는 주거, 의식주, 풍습 등을 체험하도록 요점만 간추려 놓은 곳과 과거와 현재 문명의 특징의 축약을 한 눈에 보여주는 Epcot, 만화의 주인공이 살아있다고 상상하는 城이 있는 만화 왕국이 있었다. 이 모든 곳은 현대 미국사람의 의식구조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직선적 효율성, 요란함. 시스템이 모두 같아서 효율적이기는 하되, 모든 테마파크가 비슷한 이동수단과 내용이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동일하게 크고 소란하며 요란하여 며칠을 지내다 보니 어지럽고 지루하였다. 靜과 動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온통 움직임뿐이다. 테마파크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는 만화왕국이 길바닥도 돌로 만들어져 있고, 건물들의 손잡이, 음료대, 건축물들의 위치 등도 다소 여유 공간이 있었고 조금 고풍스러웠다. 낡았지만. 그 당시 대단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였던 디즈니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떠한 형태의 새로움을 우리 앞에 선보일까? ‘내가 만일 21세기의 디즈니라면?’라는 주제로 유치원아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백일장에 참여하여 개인별, 단체별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면 어떨까?
시간에 쫓기듯 이곳저곳, 이 기계 저 기계 속을 헤매다 보니 느긋이 앉아 인간과 인간의 정감을 나누는 곳이 그리워졌다.
포석정처럼 임금님이 술을 떠서 연못에 술잔을 띄우면 다음 자리에 앉은 신하의 자리에 잔이 멈추어져 뱅뱅 돌아 그 신하가 술을 마시고 시를 읊고, 다시 술을 떠서 연못에 띄우면 다음 자리에 술잔이 가며 정담을 나누던 정원 방식도 낭만적이다. 술잔을 물에 띄우면 잔이 물길을 따라 흘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 닿는 것이다. 그 술잔을 돌리며 담소를 나눈다. 현대에 맞게 약간의 과일과 과자, 아이스크림 등등을 돌리면서, 혹은 저녁에는 촛불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소원을 말해보면 어떨까? 이런 낭만의 장소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침을 뱉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겠지. 설마.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며, 자신의 잘난 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수줍은 체 뒤로 물러나는 것도 드러내보이고자 하는 한 형태일 수 있다. 보여주는 것, 준비된 것을 즐기는 것도 기쁘지만 더불어 참여자들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만들어가는 프로그램, 휙휙 쌩쌩 돌아가는 속도의 즐거움과 더불어 속닥속닥 나지막한 소리로 생명들과 정을 나누는 프로그램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