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와 옥이는 한뫼골 같은 마을에 살면서 한뫼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에서 늘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도 잘 했고 모든 면에서 모범생으로 칭찬을 받는 아이들이였습니다.(한뫼학교는 각학년이 모두 한반씩이었다)
철이는 옥이 보다 한살 아래로 자그마한 체구에 유난히 눈이 반짝이는, 사내 녀석으로는 예쁘장한 얼굴이었는데 성격은 좀 내향적이어서 과묵한 편이었으나 전교반장이 되면서(당시는 임명직이였으므로 남학생을 우선했다) 통솔력도 생기고 급우들 앞장서서 활동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옥이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홀쭉한 키에 시골 아이치곤 희고 고운 얼굴에 쾌활한 성격에다가 노래를 아주 잘 불러 학교에서나 동네에서 꾀꼬리로 소문난 아이였지요.
당시 그 학교에서는 6학년이 졸업 무렵을 기하여 <한뫼골 학예잔치>라 하여 사은회 겸 교내학예회를 매년 거창하게 벌이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임한 졸업반에서는 그해 어떤 프로그램으로 한뫼골 잔치를 빛낼까 궁리하다가 아무래도 제가 평소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던 연극을 한번 해보기로 작정하고 대본 준비부터 차근차근 진행하였는데 제목은 <효녀 심청>이였습니다.
극은 3막으로 나누어 1막은 엄마를 잃은 심청 부녀가 젖동냥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2막에서는 심봉사가 물에 빠져 구출되면서 시주 약속한 공양미 3백석 마련을 위해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장면, 마지막 3장에서는 심청의 효심이 감천하여 맹인잔치에서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되는 장면을 어린이 수준에 맞도록 각색하여 밤잠 설치며 그리고 가슴 설레이며 대본을 썼지요.
등장인물은 말할 것 없이 주연인 심청이 부녀 역을 철이와 옥이 에게 맡기되 뺑덕어멈, 몽운사 주지스님, 뱃사람 등 단역에 이르기 까지 63명 반원 모두를 등장인물로 배역해서 동참의식을 불러 일으켰고 무대장치는 마침 대형 그림에 소질 있는 최선생님의 지도로 합동화로 배경을 설치하고 의상 소품 음향등은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직원과 육성회 임원들과 자모회원님들이 적극 주선을 해주어 그야 말로 대작의 공연을 기대하면서 연습에 들어갔습니다.
매일 수업이 끝나고 해가 뉘엿뉘엿할 때 까지 연습에 열중하면서 반원 모두는 즐거워했고 연기실력은 지도하는 제가 감탄할 정도로 진도 빠르게 늘어가더군요.
드디어 잔치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강당이 없으므로 4교실 간 막이를 터놓은 가설 공연장은 예년과 같이 학부모 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한 학구내 주민들이 모여와 그야 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각 학년에서 준비한 노래와 춤 등의 프로가 끝나고 맨 마지막 순서로서 드디어 징소리도 우렁차게 <효녀 심청>의 막이 올랐습니다.
막이 오르자 심봉사(철이 분)가 첫 번째로 등장한다. 낡아 일그러진 갓을 쓰고 누더기 옷에 다 떨어진 짚신을 끌고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젖먹이 청이를 엎고 넋두리도 처량하게 읖조리는 데, 청이 낳고 한이fp 만에 세상 떠난 청이 에미를 애도하며 불쌍한 신세 한탄과 청이의 젖동냥을 하는 구슬픈 가락이 더듬거리는 지팡이 걸음과 장단을 맞춘다. 그 능청스러운 목소리와 맹인의 제스쳐에 관객들의 첫 박수가 터진다.
그 후 열대여섯 소녀로 자라 이제는 아버지를 봉양하러 나선 청이(옥이 분)가 그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거의 모든 대사들을 노래로 부르며 등장한다.
“가련하신 어머니 천국에서 굽어 보사 앞 못보는 아버지 밤낮으로 도우소서 불쌍하신 아버지 그 누구가 모시리오 이 한 몸 정성 다해 아버지를 봉양한들 부모님 하해 은혜 어찌 모두 갚으리오”
이쯤에서는 관중석은 숙연해지면서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재 넘어 장승댁 집안일 도우미로 일하러 다니노라는 청이의 귀가가 늦자 마중나선 심봉사가 외나무다리를 헛디디어 시냇물로 빠질 때는 엉덩이 아픈 줄도 모르고 떨어지는 연기를 보여 잠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구출해준 몽운사 주지 스님께 얼결에 공양미 삼백석 시주를 약속하고는 뒤늦게 땅이 꺼지도록 후회하는 심봉사의 넋두리가 애처롭기만 하다.
이 사실을 안 청이가 급기야 아버지 몰래 중국왕래 장삿배의 해상 제물로 몸을 팔기로 결심을 한다. 해상 무역길에 꼭 지나쳐야하는 인당수의 물길이 너무도 험하여 항해를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여기를 지나려면 어린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으니.
드디어 배 떠나는 날이 되어 청이가 눈물로 아버지를 하직한다.
“공양미 삼백석에 제물이 되어 인당수로 저는 갑니다. 제몸 팔아 아버지 눈 뜨신다면 이 한몸 더 바랄 것 있사오리까 부디 부디 눈 뜨시어 만수무강하소서”
청이 눈에서 정말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실감연기가 관중석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청이의 노래를 듣고 사태를 실감한 심봉사가 울부짖는다.
“몹쓸 녀석 청이야 이게 무슨 소리더냐 내눈 팔아 너를 사도 아까울 것 없을 진대 너를 팔아 내눈 뜬들 그 무슨 소용이냐 안된다 안된다 죽어도 너를 못 보낸다 청아 청아 내딸 청아 - !”
벌써 무대에서 사라진 청이를 애타게 부르면서 땅을 치고 통곡하는 심봉사의 눈에서도 실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관중들을 더욱 울리고 마는 명연기의 극치를 보인다.
파도가 무섭게 포효하는 인당수. 뱃머리에 올라선 청이가 다시 한번 천지신명께 빌고 아버지의 눈뜨시기를 기원한 다음 치마를 뒤집어 쓴 채 그 높은 뱃 머리에서 무대아래 파도속으로 몸을 날릴 때 그 실감나는 열연으로 관중석은 또 한번 전율한다.
마지막 3막에서 왕비가 된 청이의 주청으로 대궐에서 벌인 맹인 잔치에서 아버지의 눈을 뜨시게 함으로서 효성과 환희 극치를 보이는 장면 까지 출연진의 놀라운 연기는 주인공 청이 부녀 뿐 아니라 스님, 뺑덕어멈, 스님 등 조연과 동네사람들, 뱃사람 등 단역에 이르기 까지 온 반원의 연기도 칭찬을 아낌없이 받을 만큼 대견하였으니 어떤 대목에서는 대본에도 없는 애드립의 재치로 관중의 흥미를 한층 돋우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아동극 <효녀 심청>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그해 <한뫼골 학예잔치> 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언대로 라면, 그 떡잎의 모양을 될 수록 정확히 그리고 빨리 파악해서 거목으로 자라도록 인도하는 일이 사람을 기르고 가르치는 이의 최선의 임무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철이와 옥이는 성인이 될 때까지도 이름대신「심봉사」와「심청이」로 불리워 졌으며 둘다 나란히 연예계통의 대학을 나와 줄곧 연극계에 몸담아 활약하였고 특히 옥이는 그 이름이 꽤 알려진 연극계의 중진으로 활약하다가 지금은 외국으로 이민해서 자녀들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