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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대전에서 출발할 때부터 날씨가 흐리기는 하였으나 워낙 가뭄 탓으로 모두가 비가 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정감을 가지게 한다. 가뭄으로 단풍의 빛깔이 예년만 못하다고는 하나 누렇게 익은 벼와 들녘의 갈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으로 보는 듯하다. 자연 예찬을 하는 순간에 중부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증평에서 충주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가끔은 빗방울이 차창에 내려앉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몇 개월 만에 보는 빗님이기에 문학기행 가는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다. 충주에 다다를 즈음 빗방울은 제법 차창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충주 공용시외버스 옆 롯데마트에 주차를 하고 시사문단 회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언제나 처음 만나면 쑥스러움으로 서로가 한 마음으로 동화되기까지에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가 보다. 서로가 인사는 하였지만 서먹서먹한 감정은 어찌할 수가 없다. 한 쪽 귀퉁이 쓰레기통 주위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다거나 여러 사람을 만나서 무료할 때 하는 버릇이다. 뒤늦게 도창회 회장님과 손 발행인님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점심식사 할 곳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가는 중에 충주댐에서 우중에 관람을 하는데, 작은 우산으로 비를 피할 수 있다는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가 간단히 소개를 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조금 늦은 시간에 점심을 먹게 되어 포만감을 느끼도록 먹고 소주도 몇 잔을 먹게 되어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다. 비가 오는 관계로 우리는 서둘러 청풍명월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충주호를 휘돌아 드라이브하면서 보는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다. 우리가 도착을 하니 대형관광버스와 승용차들로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이다. 우중에도 관광을 위해 전국에서 오는 관광객을 보고, 세상이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지만 우중에도 여행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제법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함께 출발하였던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순간에 오늘 안내해줄 해설사님도 만나게 되었다. 단정한 외모에 안내를 멋지게 해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문학기행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으며 마네킹 포졸이 철저히 지키고 있는 팔영루에서 시작이 되었다. 팔영루를 지나면서 민속촌 분위기의 고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가 앞 연자방아에서 일행이 오도록 기다리는 순간에 해설사의 청풍명월에 대한 유례를 이야기 해 주셨다.

내륙속의 바다의 충주호는 1985년 10월에 완공된 충주댐이 만들어낸 절경이다. 충주댐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서 길이 470m 높이 97m 에 이르며, 이 거대한 다목적 댐의 건설로 저수면적 97㎢에 이르는 충주호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충주호의 여행의 백미는 물 맑고 산이 아름다운 고장 청풍면을 이른다. 충주 호반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는 충주호 부근의 풍류 넘치는 문화 유적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청풍문화재 단지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부근의 여러 명승지가 수몰되기 시작하자 수몰지에 있던 여러 유적들을 옮겨 와 원형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곳이다. 82년부터 85년까지 3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이곳은 선사유적부터 한벽루와 석조여래입상 등의 보물과 향교와 고가 등이 나란히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고가들은 청풍면 황석리. 도화리와 수산면 지곡리 등에서 옮겨 온 것으로 모두 200년 전의 고가구들로 그 당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고가에서 지금이라도 우리 동인들을 반갑게 맞이하러 주인이 나올 것 같다.

되돌아 나오면서 석조여래 입상을 볼 수 있었다. 보물 제546호인 이 여래 입상은 원래 청풍면 읍리의 대광사 입구에 서 있던 것을 수몰 전에 이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풍만하면서도 자비로운 얼굴 윤곽과 도톰한 양쪽 볼, 뚜렷한 입술, 양 어깨까지 드리워진 두 귀 등이 인자함을 느끼게 만든다. 남자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낙네들이 여래상의 코를 긁어 가루를 물에 타서 먹으면 사내아이를 얻는다는 속설로 실제로 행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심히 살펴보니 그야말로 한쪽 코가 긁어서 없어진 듯 하여 모두 세속의 삶에 한바탕 웃음으로 흘려버리기는 안쓰러움 마저 든다.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 작품으로 보여 지는 이 불상은 옮겨 오면서 만들어진 조그마한 비각 안에 자비스러움을 간직한 채 세월을 잊은 듯 서 있다.

옛날 청풍부의 정문이었던 기백과 기품이 넘쳐 보이는 금남루에는 문이 모두 3개가 있는데 가운데 문으로는 부사가 다니고 양쪽 문으로 평민이 출입해야 한다는 해설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오른쪽 문을 통해 들어가면서 모두가 잘 지키는 모범생이라며 한바탕 웃었다. 한벽루는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여 관아에서 세운 독특한 양식의 부속 목조 건물로 연회장소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루에 올라갈 때 계단 역할을 하는 익랑은 현존건축물로써 전무한 양식이고 현판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라고 한다. 곁에 아담하게 서있는 금병헌은 명월정 또는 청풍관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숙종 7년때 부사 오도일이 창건한 청풍부 당시의 동헌으로 부사가 집무를 하던 이곳은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로 당시 행정관의 검소한 생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 한벽루에 올라 호수를 바라보면 산기슭의 울창한 숲, 깎아지른 바위산이며, 호수 저편에 우뚝 솟아오른 비봉산은 웅장한 모습으로 새 자태를 갖추었고, 이름 그대로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으로, 어느 곳에서 보아도 봉황이 나는 형상이기에 호수에 뜬 봉황, 또 호수를 나는 봉황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냥 바라보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한국담채화를 보는 듯 탄성의 소리가 들리며 누구든지 읊기만 하면 아름다운 시가 될 것 같다는 감동을 받으며, 다시 한 번 가족과 함께 여유를 가지고 이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비봉산 등산을 꼭 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바람은 맑고 시원하며, 달뜨는 밝은 밤의 정취는 가히 강산 제일이라고 하니 아마도 청풍명월이란 이곳에서 유래된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과 같이 비가 뿌리는 날이면 운무로 인해 청풍대교 아래로 운치 있는 유람선이 다리 밑을 왕래하고 강안의 산천 경관이 물안개로 운무 속에 잠기게 되니 바라보는 마음마저 산이 되고 호수가 되어 절로 자연에 도취되어 옛 풍류가락이 호수의 물결과 가을바람에 실려 은은히 울려나는 것 같다.

돌아 나오는 길에 풀밭위에는 청풍명월이라 새겨져 있는 커다란 선돌이 솟아있고, 그 뒤로 지석묘와 비석 무리들이 열병을 서 있는 듯하다. 지석묘는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어른 200여명 정도가 있어야 만들 수 있기에 아마 1000 여명 이상을 통솔하는 부족장 정도가 되어야 지석묘를 세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동감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지석묘에 새겨진 별자리는 고고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으며, 우리 조상들이 큰 돌을 필요할 때 쓰기 위해서 바위에 작은 홈을 여러 곳을 파고 대추나무를 심어서 필요로 하는 만큼 잘라서 활용을 하였다는 이야기에 다시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 청풍문화재단지 여행의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일행은 제천의 명산 금수산 자락에 자리한 금월봉으로 찾아갔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도착한 곳은 기괴한 암석으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바위산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이 바로 금월봉이라 한다. 바위 생김생김이 천태만상으로 보는 이들을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곳에서 장길산 영화를 촬영지라며 안내판이 붙어 있어서 여행객들을 더욱 관심을 끌도록 하고 있다. 이곳에서 아쉬운 듯 시사문단 동인들은 서로가 사진을 찍으면서 모두가 주연이라도 된 듯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동인들은 삼삼오오 추억 남기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이제 날은 어둠으로 땅거미 지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굵어지는 빗줄기를 따라 어디로 가야하는지, 얼마만큼 가야하는지, 쏟아 붓는 빗줄기로 방향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겨움으로 별로 쾌념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호반을 따라 돌고 돌아서 만난 곳은 우리가 처음 점심을 먹으러 갔던 곳으로 되돌아 온 듯하였다. 배도 고팠지만 또 헤어져야한다는 아쉬움에 저녁을 먹으면서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하였다. 서로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즐거움에 소리치는 권주가 “~위하여”가 되풀이 하여 외칠 때 마다 식당아주머니 소주병 나르는 발걸음은 바빠졌고, 갈 곳은 머나먼 길이었지만 나그네들은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뒤풀이로 노래방까지 가서 싫 컷 에너지를 소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두시가 넘었다.

‘문학기행 한번 참! 거창하게 원 없이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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