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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수능 때가 되면 생각나는 제자

"OOO선생님이 누구십니까? 꽃배달입니다."

꽃 배달 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순간 모든 선생님들의 시선이 교무실 출입문 쪽으로 집중되었다. 아저씨는 국화꽃으로 장식된 꽃바구니의 주인을 찾기 위해 교무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옆에 앉아 있던 최 선생이 내 옆구리 찌르며 말을 했다.

"김 선생, 오늘 무슨 날이오?"
"무슨 말씀인지?"
"김 선생에게 꽃 배달이 되었기에 물어보는 말이오."
"설마 요?"

그런데 최 선생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 아저씨는 신원을 확인하고 난 뒤 꽃바구니와 시집(詩集)한 권을 내게 건네주었다. 평소 꽃바구니 선물에 익숙하지 않은 내게 꽃배달이 왔다는 최 선생의 말이 처음에는 농담인 줄만 알았다.

중요한 것은 꽃바구니와 시집(詩集)을 보낸 사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꽃바구니 여기저기를 뒤져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받은 시집을 페이지마다 펼쳐보아도 보낸 사람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더군다나 보내온 책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詩集)이기도 하였다. 사실 내가 그 시인(詩人)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내를 포함하여 몇 명뿐이었다.

그래서 내심 아내가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그런 일이 없다며 극구 부인하였다. 오후 내내 꽃바구니를 배달시킨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국화꽃 향기가 내 코를 자극할 때마다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그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퇴근 무렵, 꽃바구니를 들고 교무실을 나가려는데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결과 발신번호가 1004로 된 누군가로부터 온 문자메시지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얼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선생님, 시집(詩集) OO쪽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그러고 보니 꽃바구니와 시집(詩集)을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제자였던 것이었다. 잠시 퇴근을 미루고 자리에 앉아 제자가 이야기한 시집의 페이지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페이지의 빈 여백위에는 제자가 만년필로 직접 쓴 편지가 적혀져 있었다.

졸업을 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3학년 담임선생님이었던 나를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며 고마워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제자는 재학 당시 내가 한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물며 수업시간 가끔 내가 평소 좋아했던 시인의 시(詩)까지도 제자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제자는 그 시인(詩人)의 시집(詩集)을 사서 내가 즐겨 암송했던 그 시가 있는 페이지에 편지를 써 놓으면 혹시라도 선생님이 자신을 기억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불현듯 10년 전 그 제자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그때 당시 제자는 워낙 내성적이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가끔 눈에 띄는 제자는 늘 혼자였다. 제자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한번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표현해 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제자를 잊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수능 시험 한 달을 남겨놓은 어느 날이었다. 제자는 공부가 잘 안 된다며 자신이 직접 가지고 온 회초리로 정신을 차릴 때까지 때려 달라고 주문을 하였다. 제자의 완강한 부탁에 할 수없이 제자의 손바닥 몇 대를 때려준 적이 있었다. 물론 요즘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자극이 된 탓일까? 제자는 수능 시험 남은 기간동안 최선을 다해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매년 수능시험 때가 되면 그 제자가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결혼을 하여 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지금도 제자 또한 학창시절의 그 아름다운 추억이 떠올려지는가 보다. 제자는 편지의 맺음말로 후배들에게 시험을 잘 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무쪼록 그 제자의 바람대로 우리 아이들 모두가 수능 시험을 잘 치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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