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구름이 끼여 그런지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오니 어둑컴컴합니다. 학교 올 때까지 불을 켜고 왔습니다. 학교에 들어오니 이른 아침에는 오 주사님은 변함없이 손에 흰 장갑을 끼고 국화에 물을 주고 계셨습니다. 성실함의 대명사입니다. 4년 내내 성실을 저에게,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에게 행동으로 가르쳐주시는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오늘 아침 교무실에는 매일같이 보이던 3학년 두 총각선생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선생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책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책을 보았습니다. ‘세상을 정복하기 전에 자신을 정복하라’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꿈꾸는 사람은 자신을 이길 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을 정복하기 전에는 자신을 정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싸움은 언제나 내면에 있습니다. 꿈꾸는 사람에게는 때로 혹독한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이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이 글을 읽는 가운데 수능시험을 치고 나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어 실의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들은 12년 동안 꿈과 비전을 갖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찾아오는 것은 실망뿐일 것입니다. 좌절뿐일 것입니다. 고통뿐일 것입니다. 한탄뿐일 것입니다. 눈물뿐일 것입니다.
부모님 보기가 민망합니다. 형제자매 보기가 민망합니다. 친척이 보기에 민망합니다. 친구들 보기에 민망합니다. 선생님 보기에 민망합니다. 시험을 잘 쳤느냐고 물을 때마다 고역입니다. 친척으로부터 시험 잘 쳤느냐고 전화가 오면 고역입니다. 친구가 물어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이 물어도 그렇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강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이런 학생들에게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격려가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통 속에 우는 자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웃음 속의 울음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혼돈과 좌절 속에 실망하는 자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방향이 되어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고통 중에 있는 자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잡다한 생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잡고 있는 자에게 가슴을 치유하고 가슴을 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앞이 보입니다. 그래야 미래가 보입니다. 그래야 희망이 보입니다. 그래야 다시 준비할 용기가 생깁니다. 그래야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깁니다. 그래야 다시 훈련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단련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수능시험을 못 쳐서 낙심 중에 있는 자를 일으켜 세우야죠. 고통 중에 울고 있는 자를 일으켜 세우야죠. 이제 남을 의식하지 말아야죠. 이제 남을 보지 말아야죠. 남이야 서울대를 가든 어디를 가든 상관하지 말아야죠. 이제 남의 비방하는 말, 책망하는 말을 듣지 말아야죠.
오직 다시 출발하면 됩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백 가지 아는 것보다 한 가지 경험하는 것이 낫습니다. 쓰라린 한 번의 경험은 인생의 길을 성공의 길로 이끄는 보약이 됩니다. 한 번의 시련이 미래를 준비하는 양약이 됩니다. 단련하는 계기가 됩니다. 훈련하는 계기가 됩니다. 꼭 건너야 할 강이라고 생각하면서 건너가야 할 것 같습니다. 통과해야 할 불이라고 생각하면서 통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위대한 사람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좌절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절대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좌절을 이겨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극기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꿈꾸는 학생들이여! 실망에 빠진 자여! 고통 중에 우는 자여! 자신을 이길 줄 아는 지혜로운 학생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자여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