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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당직 반장님의 따뜻한 말 몇 마디

오늘 날씨는 더 춥습니다. 그런데도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일찍부터 교실에서 불을 켜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오후부터 풀린다고 하니 공부하기도 좀 나을 것 같네요. 공부하면서 겨울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다행히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벌써 마음부터 달라집니다. 야자 없다고 생각하니 날아갈 것 같습니다. 언제 야자 없는 학교에 근무할 수 있을지 그게 저의 바람 중 하나입니다.

오늘 새벽달이 참 좋았습니다. 둥근달이었습니다. 환한 달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찾아오는 둥근달의 모습은 언제나 웃는 얼굴입니다. 찡그리지 않습니다. 추위에도 움츠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달은 언제나 친구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달을 외면해도 달은 절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뒤를 비쳐줍니다. 고개를 숙이면 허리를 비쳐줍니다. 바라보면 얼굴을 비쳐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하게 비쳐줍니다. 어떤 어려운 가운데 있어도 반갑게 비쳐줍니다.

달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어도 달은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어줍니다. 달에 대해 무관심해도 달은 언제나 나에게 다가와 의미를 부여합니다. 달에 대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달은 언제나 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같습니다. 달에 대해 웃음을 주지 않아도 달은 언제나 웃어줍니다. 달에 대해 인정을 해주지 않아도 달은 언제나 인정해 줍니다. 정말 좋은 달입니다. 저도 달처럼 만나는 사람들에게 꽃처럼 다가가고, 환하게 다가가고, 웃음으로 다가가고, 친구로 다가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제 저녁 야자시간에 의미 있는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학교에 고정적으로 당직하시는 오 주사님이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쉬게 될 때 반장으로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당직을 하시는 분이 우리학교에 당직하러 오셨습니다. 제 앞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당직의 고충을 들었습니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화가 끝날 무렵 당직 반장님께서는 저에게 ‘다음에 교감선생님께서 교장이 되시면 그 학교에 당직을 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교감선생님은 학자타입 같고 인자하다고 하시더군요.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듣기 좋은 말을 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직 반장님에 저를 이렇게 잘 보고 계시니 너무 흥감했습니다. 당직하시는 날 만나면 웃으면서 허리를 굽히면서 ‘수고하십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등의 인사하는 것이 고작인데 이러한 사소한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저를 보고 ‘교감선생님’으로 불러주고, 교장으로의 기대도 가져주시고 이렇게 꽃으로 만들어 주신다 싶으니 정말 감사할 것 뿐 아닙니까?

평소에 어른처럼 대한 것이 그분께서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은 자기를 하나의 꽃으로 만들어 준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부드러운 말이 자기를 의미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 준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꽃이 되어 저에게 다가와 저를 인자한 사람으로 불러주었습니다.

그러니 실제 그러하지 못하지만 그분의 꽃의 향기로 인해 그러한 자가 되려고 애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그분은 꽃이 되어 다가와 저를 학자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실제 그러하지 못하지만 그의 꽃향기로 그러한 자의 모습을 닮으려고 애를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저가 교장이 되어 함께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저도 반장님처럼 꽃으로 다가가고 싶고 의미를 부여하며 힘과 용기를 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인이 ‘꽃’에서 노래한 것처럼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저같은 사람이 당직반장님과 같은 분의 좋은 만남을 통해 꽃이 되도록 했으니 얼마나 아름답게 여겨집니까? 얼마나 향기롭습니까? 인자하지 못해도 인자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학자가 아니어도 학자처럼 느껴집니다. 인자한 사람 되도록, 학자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고픈 생각이 떠오릅니다. 당직 반장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몇 마디가 저를 그러한 사람 되게 각성시켜 주니 정말 말이 가지는 위력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만나 함께 생활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꽃으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만나는 학생, 선생님, 학부모님 할 것 없이 모든 분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서로서로 의미 있는 사람으로 다가가고 의미 있는 사람으로 다가오도록 하면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너에게 꽃으로 다가가고, 너는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도록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와 성품으로 만나는 사람을 꽃이 되게 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 되게 하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아름다운 언어로 인해 학생을 변화시키고 선생님을 변화시키고 학부모님을 변화시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희망적인 언어로 사람을 희망으로 물들이고 우리가 가진 긍정적인 언어로 사람을 긍정으로 물들이고. 우리가 가진 발전적인 언어로 사람을 발전적인 사람으로 물들이면 울긋불긋 단풍든 나무처럼 얼마나 보기가 좋겠습니까?

우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성품으로 인해 상대방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더 이상 만족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닌 착한 성품으로 상대방을 착하게 만들면 더 이상 행복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닌 성실한 성품으로 상대방을 성실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가 지닌 인자한 성품으로 상대방을 인자하게 만들 수 있다면 더 이상 보람을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지닌 부드러운 성품으로 상대방을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큰 꿈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선생님들은 우리들이 가진 언어와 성품으로 좋은 학생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진 좋은 언어와 좋은 성품으로 우리 학생들을 향기 나는 꽃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진 좋은 언어와 좋은 성품으로 우리 학생들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학생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진 좋은 언어와 좋은 성품으로 선생님들을 향기나는 꽃으로, 의미 있는 선생님으로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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