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5 수 맑음
traveller`s lounge에서 일어나 보니 새벽 4시다. 미국에서 3년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휴가차 귀국한다는 인도 청년은 트렁크가 여러 개였다. 선물을 잔뜩 사들고 고향을 찾은 것이다. 그의 집은 Calcutta가 아니라고 했다. 7시에 lounge를 나올 예정이라는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4시 반 쯤 공항청사 밖으로 나왔다, 대여섯 명의 택시기사들이 몰려와 나를 태우려고 아우성이다.
Sudder st. 까지는 450루피란다. 나는 DumDum 역까지만 가기로 하고 200루피에 택시를 탔다. 한참 후에 내가 내린 곳이 Sudder St.란다. 450루피를 내란다. 택시 내에서 나에게 얘기를 하고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당혹스러웠지만 바가지를 쓴 것을 직감하고 침착하려고 노력하며 밝은 표정으로 돈을 줬지만 기분이 언짢았다. 하루 밤 사이에 900루피를 썼으니 말이다.
택시기사를 보내고 나는 이른 새벽 캘커타의 낯선 거리 Sudder st.를 걷는다. 최초로 걸어보는 캘커타의 거리,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게 보인다. 그런데 도로며 건물이 너무 지저분하다. 우리나라의 어느 시대에 거리가 이렇게 지저분한 적이 있었을까. 나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지저분한 거리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우리나라 60년대의 서울거리도 이보다는 훨씬 깨끗했던 것 같다.
까마귀와 강아지와 사람이 한 데 뒹구는 거리, 생기 있는 듯하기도 하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보이기도 했다. 길바닥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많다. 오토바이와 택시가 사람보다 우선인양 위협적으로 질주한다. 길을 가다가 길거리에서 짜이를 한잔 사 마셨다. 인도에서의 최초의 구매행위였으며 최초의 먹거리였다. 그 맛있다던 짜이가 이것이로구나 하며 맛을 음미해보았다. 2루피였다. 52원 정도다.
아침 여섯 시, 날이 밝아왔다. 주위에 식당이 많다. 일단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It`s my first time in India. I have never had any Indian food. What is good for breakfast.`(인도에 처음이예요. 인도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아침식사로 뭐가 좋습니까?)라고 했더니 음식을 가지고 왔다. 검은 소스로 구운 것 같은 짭짤한 고기 몇 첨과 빳빳하게 구운 빵 조각이 전부다.
이 음식이 뭐냐고 하니까 ‘마담 빠야’란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침식사라며 힘이 불끈불끈 솟게 하는 식사라며 알통을 만들어 보인다. 짜이를 날라다 주고 먹는 법을 가르쳐주며 친절을 보인다. 가격은 짜이 포함 27루피였다. 우리 돈 300원정도. tip이 있다기에 5루피를 주었더니 고맙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마담빠야’가 ‘Mutten Baya‘ 양고기 메뉴임을 알게 됐다.
나는 다시 릭샤를 타고 Indian Museum까지 왔는데 릭샤꾼은 흥정할 때는 50Rs라고 했는데 와서는 150Rs를 달라고 한다. 인도 돈의 값어치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자꾸 혼란을 겪는다. 매번 우리 돈으로 환산을 해야 그 돈이 얼마인지 짐작이 간다. 물론 여행 첫날이니 당연한 일이다. 인디언 뮤지엄 앞에서 20대 초반의 두 젊은이를 만나 캘커타의 번화 상가인 뉴우 마켓을 구경했는데 그 규모가 놀라울 정도다.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인도에 대규모의 쇠고기 시장이 있는 것은 물론 닭고기, 옷가게 등 품목별로 엄청난 먹거리 상가가 조성되어있었다. 영어도 제법 잘하고 친절하고 농담도 잘하고 해서 그냥 친구로 사귀고 싶어서 계속 같이 다니는 줄 알았는데 자꾸 자기네 가게를 구경시켜주겠다며 데리고 가서는 그냥 구경하라고만 하지만 물건을 팔려는 낌새를 왜 모르겠는가.
너무 오래 따라다니며 안내를 해주는 것이 미안해서 손수건 한 장의 값을 물었더니 110Rs(루피)란다. 3천원 돈이다. 사가지고 나오면서 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는 것에 물건 사는 데 절대로 바가지를 쓰지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한다. Indian Museum이 있는 거리를 Park St.라고 하는데 지하철이 오가고 뉴 마켓이 있으며 대규모 노점상가도 있고 관광명소도 많아서 자주 오가게 되는 거리다.
Park St.에서 한 젊은이가 오이의 껍질을 베끼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오이와 맛과 모양이 거의 같은데 대부분 길이가 짧고 뭉툭했다. 오이를 잔뜩 베껴 쌓아놓았다가 손님이 찾으면 물에 씻어 한 개에 5Rs에 팔고 있었다. 나도 두 개를 사서 먹었다.
그 거리에는 구두닦이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구두닦이와 비슷한 기구와 장비로 닦기도 하고 수리도 한다. 안경가게 책가게 옷가게 장신구등 없는 게 없이 별의별 게 다 있었다. 거리의 풍경은 엄청나게 분주하고 택시들은 사람들이 건너갈 틈을 주지 않고 무작정 질주한다. 아직 인도에서는 차량이 우선이며 우선 질주의 특권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산뜻하게 교복을 차려 입고 싸이클릭샤나 오토릭샤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온몸이 땟물로 범벅이 된 채 맨발로 다니며 손을 내미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아직도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지배하는 사회인가.
Indian museum에서 만난 두 젊은이가 3시부터 상영되는 영화를 보자고 해서 오후 2시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War story와 love story 중에 어느 것을 더 좋아 하냐기에 love story를 더 좋아한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렇다며 파안대소한다. 그들은 떠나고 박물관에 가니 10시에 문을 연단다.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두시쯤 그 젊은이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직 8시도 안되었다. 10시까지는 충분할 것 같아 먼저 Mother House를 방문하기로 했다. 길을 물어 찾아가니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습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 또 피부색이 다른 동서양의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봉사활동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Mother House 집 앞에는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들이 계속 따라 다니며 손을 내민다. 5루피씩 주었으나 자꾸 줄 수도 없다.
Mother House의 위치만 확인하고 다시 Park Street로 왔다. 낮 한시 캘커타에서의 첫날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한낮이 되니까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진다. 바람은 불지만 여전히 후텁지근한 날씨다. 인디언 박물관을 들어가려다가 입장료가 어른 10루피 어린이 1루피인데 외국인은 150루피였다. 미리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디언 뮤지엄엔 인도의 역사와 생활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식용, 약용, 의류용 식물을 일목요연하게 전시해놓기도 했고 각종 조각상과 동식물의 분포까지도 자료를 제시해 놓았다. 박물관을 나오니 길게 노점상이 거리를 점거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청계천이나 동대문 운동장 앞에나 비교될까. 우리가 필요한 것이 거의 다 있는 것 같다. 반바지와 전자시계는 20루피, 우리 돈 52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인도에 올 때는 한국에서 일일이 물건을 사가지고 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얼마든지 싸게 어떤 물건이라도 살 수 있으니까.
캘커타의 까마귀들은 왜 저리 반들반들 윤기가 나는가. 박물관 내부에까지 날아 들어오는 까마귀들. 캘커타는 까마귀들에게 풍요로운 곳인가. 참새들은 한국의 참새와 다를 바 없다. 낯선 곳에서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도 그 빛깔 그 목소리 그 습성 하나 바꾸지 않는 참새의 견고한 미덕이여. 지구촌 어디에 있더라도 먼먼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습성을 그대로 간직하는 참새의 그윽한 향기, 아름다운 전통… 한국의 참새나 인도의 참새나 고유한 참새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지구촌 어디에 있더라도 한국인은 한국인이고 한국문화는 한국문화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캘커타 거리의 견공들은 덩치도 모양도 표정도 비슷하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거리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참선하는 수도승처럼 지긋이 눈 내려 감고 생각에 잠겨있는 견공들. 사람들은 모두 견공들을 비켜서 분주하게 생존의 아우성 속으로 흩어져 간다. 견공들은 아랑곳 않고 선한 눈 껌벅이며 캘커타의 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