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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미국선생님과 함께 한 한국체험 -이틀째 날


한국에 도착한 날 밤 한밤중의 만찬과 정다운 친구와의 왕수다를 마친 후 호텔로 들어왔다. 호텔에는 침대가 두개 있었다. 안쪽에 하나 그리고 바깥쪽에 하나. 세 아줌마가 머리를 맞대고 두 침대에 세 아줌마가 어떠한 배열로 잠을 자면 좋을까를 의논하였다. 우리 셋 중에 나이가 가장 많고 몸집이 큰 쥬디가 안쪽방에서 잠을 청하고, 아줌마들인 까닭에 몸매가 날렵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날씬한 매리앤과 필자가 바깥쪽 침대에서 정다운 체 (*^^*) 함께 자기로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근처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가서 조선시대의 왕실 역사와 문화를 감상하였다. 황실에서 쓰던 인장들, 의상과 악세사리들, 각종 서신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가치관, 기호를 알 수 있었다. 쥬디와 필자는 고미술품과 귀금속, 서신 속에 들어있는 그림의 상징, 인장의 역할 등에 관심이 많아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매리앤은 컴퓨터 전문가이며 회계학 분야 전공자이라서인지 인문학적 관심은 크게 없다고 하였다.

고궁박물관을 나와 근처의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였다. 비교적 영어로 진행이 잘되어서 필자는 두 사람이 은행원과 일을 보도록 두고 뒤편 의자에 앉아서 필자가 미국에서 통장을 개설하고 여행자 수표를 통장에 맡기던 일을 회상하였다.

한국의 이 은행은 한적하고 직원이 적은 세인트루이스의 은행보다 크고 직원도 많으며 버글버글하였다, 사람 냄새가 더 많이 배어있다. 미국은 신용카드 사용과 수표사용, 인터넷을 활용한 은행업무가 꽤 발달한 탓인지 은행에서 직접 직원이 처리할 일이 적은 듯하다. 낯선 곳에 있다는 중압감과 생경한 용어들에 주눅이 들어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의 한국 아이들은 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영어마을에 가서 부닥쳐가며 현장 영어를 배운다고 하니 영어라는 언어뿐 아니라 이국의 은행 분위기와 전문 용어에 익숙해질 것이다.

필자는 1000$이 잘못 계산되었다고 전화를 하고 찾아가서 담당자를 만나고 확인을 요청했던 일이 있었다. 필자의 착각으로 밝혀졌지만 그 과정에서 외국인을 위한 통역시스템 등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웃의 도움도 받았다. 통역하는 과정에서 통역자가 영어를 얼마나 잘하고 전달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역할 즉 도움을 요청하는 이의 문제를 해결하려 돕는 것이 본분임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인성이 고와야 한다는 것인데 딱딱거리는 말투에 화가 나서 차라리 본인 스스로가 글로 써서 보내겠다고 생각하고 이메일을 보냈더니 회신이 왔다. 은행업무에 이상은 없다고 확인해주는 답신이었다.

필자의 잘못임에도 당시에는 알지 못하였으므로 몇 번을 찾아가서 어눌한 영어로 은행 직원들과 다투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베트남인이나 중국인, 동남아인이나 인도인 등 외국인들이 와서 앞뒤 틀리는 말로 자기 주장을 계속 펴면 직원들은 어떻게 대할까? 어찌되었든 필자는 잘못을 알고난후 한국 인형을 들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한인회에 혹시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 재미교포나 연수자, 방문자를 도와주는 제도가 있는가? 하고 생각을 하였다.

영어권에 파견되는 사람들을 위한 영어학습에는 은행을 이용하는 데에 있어서 자주 발생하는 사고의 유형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곳, 질문하여야 할 사항과 준비하고 꼭 챙겨야 할 것 등에 대한 훈련과정도 있으면 현실에서 맞부닥칠 때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외국인들이 은행업무를 보는 데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시스템에 대한 자세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사례를 듣고 해결해주려는 진지한 자세가 중요하지 딱딱거리며 몇 마디 해놓고 일을 했다고 하면 분노만 더 살 것이다. 필자의 경우 몹시 화가 났었다. 육두문자가 입언저리에서 맴돌았었다. ‘당신이 무엇 때문에 돈을 받습니까?’

한국에서 살고 있는 재한 필리핀회, 혹은 베트남인회 등 소속인들 중 인성검사를 하고, 선발을 하여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강도 높게 한 후에 필요한 도움을 주면 ‘살기좋은 한국, 가고 싶은 한국’ 등 한국의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인과 결혼을 한 친절하고도 교육받은 아줌마들이나 2세들은 어떨까? 재외 은행들도 현지의 교포나 현지인을 잘 교육하면 은행자체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친절하게 해줘서 싫다는 사람은 없다.

오후에 일이 있어 4H 본부를 방문하였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택시에 네 사람의 아줌마가 꾸깃꾸깃 포개어 들어앉아 열심히 왕수다를 떨며 짧지 않은 거리를 차를 타고 갔다. 우리 일행이 아닌 미국 사람이 한 사람 합류하였다. 필자는 친한 사람과 격의 없이 수다 떠는 것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필자의 미국 친구들이 필자처럼 수다를 좋아하면서도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좋은 말투와 말씨를 유지하며, 같은 기호를 가진 내용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다행으로 여긴다. 그렇지 않다면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조그만 일에도 어깨에 힘을 주며 으르는 사람들을 보면 필자는 당장 달려가서 ‘머리털을 몽땅~~~’ 하는 험한 생각이 든다.

호텔로 돌아올 때에는 전철을 이용하였다. 호텔에서 거리가 제법 멀고, 교통이 혼잡하며, 해당 전철역에서 호텔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며, 한국의 전철문화도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각자 900원을 준비하여 매표소에 줄을 서서 표를 샀다. 전철에서 장애인 학교에 다니는 남녀중학생들과 마주하고 앉았다. 여학생들은 수줍어하며 외면하고 앉아있는데 남학생 한 녀석이 ‘Hello~'하고 입을 비뚜르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쥬디와 매리앤이 열심히 ’Hi~. Nice to meet you'하고 받아주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여학생들도 배시시 웃으며 입을 오물거렸다. ‘Where did you come from?' 매리앤이 미국에서부터 열심히 연습한 한국말로 ’나는~ 매리앤 입니다. 미국에서 왔~쎄요‘하고 답하자 까르르 웃고 야단이었다. 종착역에서 내리면서 아이들은 예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녁 7시에 ‘난타’ 공연을 관람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전철을 타고 호텔까지 오는 동안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옷을 갈아입고 밥도 못먹고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난타 전용극장으로 날아갔다. 빵과 우유를 사들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지정된 좌석에 앉았는데 좌석이 좋은 곳이라 입장권이 꽤 비쌌다. 10% 할인권을 호텔에서 받았는데 객실에 두고 와서 이용을 하지 못해 속이 무척 아팠으나 매리앤과 쥬디에겐 내색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계속 ‘아~~얼마나 손해인가’를 헤아리다가 극이 시작되어 잡념을 털어버리기로 하였다.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고, 관객과 더불어 하는 행사도 있고 배우 모두 어찌나 열심하던지 쥬디는 배우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매리앤은 관객 중 뽑혀서 무대까지 올라가서 만두를 빚었으므로 입이 귀밑까지 올라붙었다. 서구사람 한 쌍, 일본사람 한 쌍이 선발되었는데 공연을 보는 일본 관광객들이 매우 많았다. 한국 사람들도 일본에 관광을 많이 간다고 하던데 이웃 간에 서로 볼거리를 많이 개발하여 손익계산을 하는 중에라도 조금씩 양측 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온통 벌거벗고 씨름하는 스모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스모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분석하면 그나마 한 조각 걸친 천마저 걷어낸다고 해도 이해가 가능할지 모른다. 어찌되었든 그러한 운동은 그 환경과 문화, 의식과 역사에서 나왔을테니까. 옛적 그리이스인들도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경기에 방해가 되므로 옷을 걸치지 않았다고 들었다. 남성들만 운동경기를 할 수 있고 여성들은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었다. 일본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의 태도와 스포츠, 행사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나오는 길에 배우들에게 싸인을 받으러 갔다가 우리들은 ‘아이가 아니라고’ 배우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방해를 받았다. 할머니들은 배우 싸인을 받으면 안되는 것일까? 근처에 뒹구는 색색의 공들이나 두 세개 더 주워가지고 왔다. 공연 중 배우들이 던진 것이다.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쥬디는 딸 죠디에게 준다고 꼭꼭 챙겼다.

호텔로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햇반, 김치 작은 것, 동그랑땡 갈비, 우동을 샀다. 편의점 근처 전화부스에서 매리앤이 미국의 아버님에게 전화를 걸자 토네이도가 와서 아버님댁 정원의 나무가 파손되고 정전이 되어 오빠댁으로 가셨다고 하였다. 매리앤의 집도 일부 파손되었단다. 쥬디는 딸 죠디가 걱정되어 계속 전화를 하였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호텔로 와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죠디도 다른 곳으로 가서 안전하다는 답변이 왔다. 마음이 편해진 쥬디는 ‘죠디의 장례식을 준비하며 아이없이 어찌 살아야 하나’하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수시로 집에 전화를 하는 필자 역시 평안하기 그지없는 집안 사람들의 엄마가 있으나 없으나 모두 다 같다는 투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다소 실망하면서도 별일없는 일상에 감사하였다.

집은 조금 상했다지만 다친 사람도 없고 하여 마음이 편해진 세 아줌마는 거실에 앉아 내일의 일정을 의논하다 각자 정해진 잠자리로 가서 더러는 코를 골며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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