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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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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요즈음 아이들 도서관에서 무슨 책 읽을까!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자주 집 근처에 있는 시립 도서관을 이용한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도 좋고 산책하기도 좋아 자주 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신간에서부터 고전에 이르기까지 볼만한 책들을 상당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먼 거리에 있는 대학 도서관에 가기 보다는 인근의 시립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게 된다.

최근 TV에서도 도서관 세우기와 관련된 프로가 방영되어 좋은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우리의 문화 수준이나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방학을 맞아 더 자주 도서관을 가게 되었다. 진주에 위치하고 있는 이 도서관은 제법 오래된 곳으로, 모 대기업의 창업주가 자신의 고향을 위해 기증한 도서관으로 '연암도서관'으로 부르고 있다.

학위 관련 공부 때문에 자주 도서관에 오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이 도서관은 3개의 열람실을 개방하고 있는데, 한 곳은 성인들을 위한 열람실, 그리고 남녀를 구별해서 각각 열람실을 갖추고 있다. 주로 남녀를 구별해 놓은 열람실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이용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주말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이들이 도서관을 이용, 거의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중·고등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열람실도 마찬가지였다. 공부하다 지치면 밖에 나와 컵 차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여러 명이 모여 수다를 떠는 아이들도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다.

'방학을 이용해 평소에 읽지 못했던 좋은 책들도 읽고, 친구들과 토론도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자, 며칠 동안 안면을 익혀 왔던 몇몇 아이들에게 도서관에서 주로 무슨 책들을 읽고 있는지 직접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특히 아이들의 읽기와 쓰기에 대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지라 거기에 대한 의문점도 있었으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나름의 직업의식도 발동했던 것이다.

먼저 몇몇의 아이들과 상호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간단히 소개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자 했다. 인터뷰에 응해 준 몇몇의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는 중학생 여자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도서관에 오는 목적을 비교적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무슨 책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의 거의 없어요. 거의 다 영어나 수학 공부를 하거나 아님 방학 숙제를 하러 도서관에 와요."

"그럼 여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경우는 거의 없나요?"
"있죠. 학교 수행평가나 숙제를 위해 책을 빌리거나 혹은 아주 인기 있는 인터넷 소설 같은 경우는 빌려 봐요. 공짜니까…."

그리고 인문계에 다니는 남자 고등학생에게도 동일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책 같은 건 대학에 가서나 읽지. 공부하는 것도 머리 아픈데 어떻게 책까지 읽어요."
"그럼, 혹시 너희들 대학 논술이나 면접 같은 것 대비해서 학교에서 유명한 고전이나 여타 베스트셀러 종류의 책들은 읽지 않니?"
"면접, 논술 대비하기 위해 여유롭게 책 읽을 시간에 차라리 학원가면 정리해서 잘 가르쳐 주는데, 굳이 시간 내서 어려운 책들을 읽을 필요 있나요?"

아이들의 직설적인 표현에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물론 방학 중 시립 도서관에서 학교 교과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좋은 책들을 통해 내면의 성숙을 다질 수 있는 여유로운 방학조차 학교 교과 공부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심 우리 아이들을 저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나를 포함한 어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런저런 씁쓸한 생각으로 자리로 돌아와, '그렇다면 성인 열람실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지 않은 열람실을 조용조용히 다니면서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을 훑어보게 되었다. '토익 서적, 공무원 시험 준비 서적, 자격증 대비 서적…' 거의가 실용 서적 대부분이었다.

'대학도서관도 아닌데, 어떻게 교양서적 한권 읽는 이를 발견하기가 이렇게 힘들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도서관 풍경을 삭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도서관 수를 늘리고 책 수를 늘려가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내면의 성숙과 정신적인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책들을 많이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며칠 동안 조그마한 시립 도서관에 다니면서 내가 읽어낸 풍경은 그런 책들과의 만남 보다는 취업을 위해서 혹은 성적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책을 읽어야만 하는 그런 살벌하고 삭막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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