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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식

인도여행12-임종의 집 셋째 날


2005.1.16 일

날씨가 완연히 달라졌다. 꼴까타에 도착해서 며칠 동안은 더운 줄 몰랐는데 1월 10일 오후부터 밤새도록 비가 내리더니 그 후로 날씨는 갑자기 더워졌다. 우리나라에서 봄비가 오고 나면 더 더워지는 것처럼 인도도 그런가 보다. 인도의 봄은 2월에 오는가 보다. 본격적인 봄이 오려는 징조인가. 이삼 일 더 머물 때까지 날씨의 변화를 지켜보아야겠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시간 미사에 참석하고 깔리가트로 봉사하러 갔다. 60여 명의 환자가 있는 방에 그 특유의 환자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매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기 때문인 것 알겠다. 오늘도 변기통의 똥을 치우고 오줌통으로 오줌을 받아내고 밥과 물을 나르고 약을 먹이고 빈 밥 그릇을 설거지 하는 사람들에게 나르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외부 환자가 하나 들어왔다. 임종 직전의 환자다.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 분이 임종할 때까지 봉사자들이 얼마나 노력하는 지 지켜볼 수 있었다. 지켜보면서 저 형제가 조금이라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하느님 곁으로 갈 수 있기를 기도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평화 안에서 영원한 안식처에 들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 했다. 40대로 추정되는 환자는 가난한 인도에서 태에나 신분의 차별을 받으며 고난의 삶을 이어오다가 오늘 거리에서 임종을 맞이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의 눈에 띄어 임종의 집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한 한국인 봉사자가 인공호흡기를 계속 코에 대고 있었는데 이미 동공은 풀어져 있었고 간신이 호흡만 가늘게 유지하다가 결국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나 고된 삶을 살고 떠나는 것일까. 그래도 최후의 순간에 깔리가트에 실려와 여러 나라의 봉사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도 속에 따뜻한 마음들에 둘러싸여 숨을 거두었으니 다행인 것 같다. 책입자 수녀님이 흰 까운에 덮힌 임종자에게 다가가 가운을 한 번 들추어 보고는 성호를 긋고 간다. 예사로 일어나는 일이어서 수녀님의 행동도 아주 예사롭게 보이기만 했다. 주검은 조용한 눈을 아래로 감기게 하고는 빈 공간으로 옮겨졌다.

아무런 영안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은 빈 방일 뿐이다. 그 곳에 가운에 덮힌 시체를 두고 모두 자기 일로 돌아갔다. 미국인 세 젊은 봉사자들이 끝까지 손을 잡아주고 묵주를 들고 기도해주고 숨을 거둔 후에는 들것에 옮겨 깔리가트의 영안실로 옮겨졌다. 수사인 것 같기도 하고 봉사자인 것 같기도 한 나이 지긋한 한 서양인이 죽은 형제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하고 옷을 벗기고 수의를 갈아입혀서 (창호지 처럼 생긴 종이옷 같았다) 영안실로 사용되는 빈 공간으로 옮기는 것 까지 보았다.

이 깔리가트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이 세상을 떠나 주님 곁으로 갔을까. 방금 세상을 떠난 형제도 형제들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지만 이미 혼수상태로 왔기 때문에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래도 조금이라도 사랑을 느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다음 절차가 있었을 텐데 지켜보지 못했다. 흰두교식으로 화장을 할지 천주교식으로 매장을 할지 알 수가 없다.

오늘은 혼자 여행한다는 일본인 젊은이와 함께 남자 병동(men`s ward)에서 일했다. 경북대 의대생이라는 여자 대학생은 학교 실습의 일환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경희대 다닌다는 여학생도 있었다. 또 대학교 4학년이라고 만 밝힌 남학생도 같이 봉사활동을 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4개월째 인도 여행을 하고 있다는 봉사자는 인도식으로 복장을 차려입고 머리는 1cm정도로 짧게 깎고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봉사활동이 끝나는 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보통 한 달 이상 일정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것 같다. 독일에서 온 여성은 3개월 일정이라고 하고, 혼자 여행한다는 젊은이도 한 달 일정이라고 했다. 여행코스가 비슷해서인지 자주 만났던 이스라엘 대학생도 상당히 긴 여행 일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인도에서의 여행 비용이 싸서 그런 것 같다. 1월 17일 18일 이틀 더 봉사활동을 하고 바라나시로 가자.

기차 예매를 여행사에 부탁하면 수수료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내일 직접 BBD Bagh(비비디 박)에 가서 직접 기차 표 에매를 하자. BBD Bagh은 많은 관공서가 모여있는 지역이다. 안내 책자를 보니 Esplnade거리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된다고 했다. 봉사가 끝나고 곧바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컨티넨탈 게스트 하우스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아이는 영어를 제법 잘 했다. 심부름도 잘 한다. 1,000루피 짜리 돈을 잔돈으로 부탁했더니 금방 가서 바꿔가지고 왔다. 영어를 곧잘해서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인도 젊은이들은 모두 군대를 가느냐고 했더니 가기가 어렵단다. 아마 경쟁이 심한 것 같았다. 한국에서 인도의 정보통신(IT)기술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더니 놀라워 하며 부려운 눈치였다. 인도를 여행하다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한이냐 북한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 한 때 인도는 북한과 더 가깝게 지낸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남한과 북한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북한은 남한보다 경제 사정이 나쁘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며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같은 역사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남북으로 분단되어 50년이 넘도록 헤어진 부모형제를 못만난다. 그 동안 남한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는데 북한은 여전히 가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온다고 했더니 놀라워하면서 자기들도 파키스탄과 한 나라였는데 갈라졌다고 한다. 1945년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했듯이 한국도 일본으로부터 독립했다고 하니 한국과 일본이 한 나라였느냐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한 나라가 아니라 일본이 한국을 침범하여 36년 동안 지배했다고 하니 또 놀라는 눈치다.

모든 인도인들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아이는 다른 젊은이들에 비해서 비교적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느냐고 하니 학교에서 배웠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고 하기에 100만원 정도 벌 수 있다고 하니 Take me. Take me. 라며 자기를 데리고 가라고 매달리는 것이다. Kolkata에 한국 음식점이 없냐고 하니까 없다며 나보고 하나 차려서 자기가 일하게 해달라고 또 조르는 것이다.

그 아이가 말하는 대로 계산을 해보니 2만 달러(2천만원)면 음식점을 낼 수 있을 것도 같다. 콜카타에 한국음식점을 차려서 같이 일하자고 막무가내다. 이렇게 여관 종업원 아이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동양인 여자가 들어온다. 한국사람이냐고 하니까 그렇단다. 6개월 째 혼자 인도 여행을 하고 있단다. 네팔에서 비자를 다시 받았단다. 3월까지 더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9개월 일정으로 인도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니 인도 매니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깔리가트 임종의 집에서 우리들에게 한국말로 자세하게 봉사활동 일정과 장소 시간 등에 대해서 안내를 하던 30대 자원봉사자는 작년 3월부터 2년 가까이 임종의 집에서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적 부담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도 퇴직 후에 인도 유학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타고르의 시를 연구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방만 하나 마련하면 하루 5,000원으로 생활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제는 한양대 중국어과 정옥이라는 학생과 선배라는 인하대 경영학과 학생과 함께 번화가인 New Market 근처에 갔다가 다시 Park Street에 있는 Himalaya라는 상점에 가서 나는 20루피 짜리 샴프 하나를 사고 두 사람은 1300R씩 화장품과 기타물건을 샀다. 가격이 확실히 싸다. 우리돈 32,000원 정도인데 물건이 한 보따리 씩이다. 지금은 여행일정이 많이 남아서 물건을 못 사지만 여행을 끝내고 다시 콜카타로 돌아왔을 때 히밀라야 대리점에 와서 화장품과 건강 제품을 사야겠다고 계획을 세워보았다. 타고르의 저서도 몇 권 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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