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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눈뜨고 코베가는 곳 '방심은 금물'


이곳 필리핀 바기오로 연수를 떠나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빠른 시일 내에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작은 정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오랫동안 생활해 온 한인(韓人)들의 이야기는 타국 생활을 처음 접하는 우리 가족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였다.

특히 아내는 외출 시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경험할 때마다 그 내용을 수첩에 꼼꼼히 적는 치밀함까지 보이기도 하였다. 하물며 아내는 며칠 사이에 바기오 시내에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가게까지 알아두었다.

그래서 일까? 우리 가족은 그렇게 큰 불편함이 없이 이곳 생활에 어느 정도 만족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는 한 지인(知人)의 말을 늘 새기면서 우리 가족은 이곳 생활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주 일요일이었다. 아내와 함께 휴대폰을 사기 위해 이곳에서 유명한 바기오 시내 한 백화점을 방문하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백화점에는 휴일을 맞이하여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곳 또한 휴대폰의 가격과 모델이 천차만별하였다. 이곳 휴대폰은 우리나라와 방식이 달라 매번 로드(Load)를 사서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기능이 영문으로 되어 있어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사용하는데 있어 큰 불편함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떤 휴대폰을 사야할 지를 몰라 이것저것을 구경하던 중 아주 눈에 익은 국산 휴대폰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격도 다른 나라에서 만든 휴대폰보다 훨씬 더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점원으로부터 우리나라 모(某) 회사에서 만든 휴대폰은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돈이 많은 사람들만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난 뒤 왠지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아내와 나는 외국에 나와 국산품을 애용하는 것 자체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비싸기는 하지만 거금을 들여 우리나라 휴대폰 하나를 샀다. 이곳에서 장만한 첫 휴대폰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백화점 쇼핑을 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주머니 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없어진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장바구니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새로 산 휴대폰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녔던 모든 곳을 다시 가보았으나 헛수고였다. 할 수없이 휴대폰을 산 가게로 찾아가 그 사실을 이야기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주인인 현지인은 모든 것은 손님 불찰이라며 도와 줄 방법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곳은 소매치기가 많아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의 말을 덧붙였다.

그 현지인의 말에 항상 외국인을 만나면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친절했던 이곳 현지인들의 행동들이 가식적으로 보였다. 그 와중에는 외국인들을 노리는 현지인들이 있다는 사실에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아무튼 값비싼 휴대폰을 잃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내와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번 일로 이곳 현지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나의 선입견이 달라지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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