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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햄스터에게 배운 교훈!

"선생님은 왜 딸 하나만 낳았어요?"

사람들은 곧잘 자식 하나만 키우는 우리 부부를 보고 이렇게 묻곤 한다. 외동딸이어서 그런지 아이가 커갈수록 외로움을 많이 탔다. 특히나 동생이 있는 또래친구들을 보면 부쩍 부러워하며 자기도 빨리 동생 하나만 낳아 달라고 보채곤 했다. 허나 나와 아내의 나이는 이미 불혹을 넘겼거니와 이제 와서 새삼 아이를 갖는 다는 것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애완동물 키우기였다.

개를 키우자니 선천적으로 동물을 싫어하는 아내의 반대도 반대려니와 아파트에서도 금하고 있는 터라 곤란했다. 그래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햄스터였다. 우선 키우기도 손쉬워 재밌을 것 같고 무엇보다 덩치가 작아 귀여웠기 때문이다.

드디어 애완동물 가게에서 어린아이 주먹만한 갈색 빛깔의 햄스터를 한 마리 사 왔다.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플라스틱 우리였지만 덩치가 워낙 작다보니 처음에는 시야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불로 깔아준 톱밥 속에 들어가 두 귀를 쫑긋거리며 사람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더니 딸아이는 금세 햄스터의 이름을 쫑이로 지어버렸다. 쫑이, 쫑이 하고 이름을 몇 번 불러보니 부르기가 쉬워 햄스터의 이름은 그날로 쫑이가 됐다. 그리곤 거실 텔레비전 옆 제일 보기 편한 자리에 쫑이의 우리를 놓아두었다.

쫑이는 유난히 소리에 민감했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억센 발톱도 없는 약하디 약한 쫑이가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예민한 감각에 의존해야만 했을 것이다. 쫑이를 보기 위해서 온 신경을 발가락에 집중한 채 살금살금 접근해도 녀석은 어떻게 알았는지 금세 깔아놓은 톱밥 속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그랬다간 인기척이 사라진 뒤에야 조심스럽게 기어 나와 먹이를 찾아먹곤 했다.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죽습니다. 대신 수분이 많은 상추나 사과를 주세요."

동물가게 주인이 여러 차례 당부한 말도 있어 우린 사람도 먹지 못하는 귀한 사과와 싱싱한 상추를 사다가 종종 넣어주었다. 그러면 녀석은 아무도 보지 않는 밤중에 나와 사각사각 먹이를 갉아먹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뒤늦게 늦둥이를 기르듯 우리 가족은 쫑이를 그렇게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 기르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좁은 공간에서 우리 가족 이외에 또 다른 생명체가 꿈틀댄다는 사실이 자못 신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만 쫑이가 가출을 하고 말았다. 가로 세로 한 뼘 반정도가 될까말까한 낯설고 좁은 우리 속에서 하루 종일 하릴없이 지내며 점점 비만해지던 것이 안타까워 심심파적도 하고 운동도 시킬 요량으로 쳇바퀴를 넣어준 것이 그만 화근이 됐다.

처음에 녀석은 이것이 도대체 뭔가 하는 뜨악한 표정으로 쳇바퀴 주위를 맴돌며 바퀴를 툭툭 건드려도 보고 이빨로 갉아도 보고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아예 쳇바퀴 속으로 들어가 바퀴 돌리기에 여념이 없는 게 아닌가. 거기까지는 우리의 아이디어가 맞아떨어지는 듯 싶었다. 헌데 녀석의 운동 신경이 유별난 건지 아니면 좁은 공간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쫑이의 쳇바퀴 돌리는 솜씨는 나날이 향상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소음 공해도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달달달, 달그락달그락, 꼭 한밤중만 되면 좁은 플라스틱 우리 안에서 이명처럼 울리는 소음으로 번번이 단잠을 깨는 경우가 생겼다. 가뜩이나 신경이 예민한 나는 녀석이 내는 소리가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여 우리 부부는 궁리 끝에 밤에만 딸아이 몰래 살그머니 녀석을 베란다에 내놓기로 합의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여름 더위는 밤에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불쾌했다. 밖에 있는 우리도 이렇게 더운데 좁은 플라스틱 안에 있는 녀석은 얼마나 더울까. 마음이 여린 아내는 매일 햄스터 걱정이었다.

"그럼 살짝 출입구를 열어 놓지 뭐."

이렇게 해서 밤마다 우리의 천장의 출입구가 개봉된 채 녀석은 베란다에서 시원한 밤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아주 만족한 삶이었다. 정성스럽게 선별된 싱싱한 먹이가 아침저녁으로 공급되고 특히나 녀석이 좋아한다는 해바라기씨까지 사다가 한 옴큼씩 놓아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청결한 톱밥도 갈아주는 등 녀석을 위한 모든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녀석을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등기이전시켜가고 있을 무렵의 어느 일요일 아침, 먹이를 주기 위해 베란다에 나갔던 아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여보, 햄스터가 없어졌어요."

아내의 외침을 듣고 베란다로 달려가 보니, 텅 빈 우리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햄스터의 자취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녀석이 탈출을 한 것이다. 완벽한 탈옥이었다.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떨어져 내리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그리스신화의 인물 시지프스처럼 녀석도 그 좁은 우리 안에서 무수히 쳇바퀴를 돌리며 좌절과 절망을 체험했을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어떤 일정한 법칙을 터득했으리라. 돌리면 돌릴 수록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쳇바퀴를 고정시키지 않는 한 탈출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아주 우연히도 쳇바퀴 사이에 이물질이 끼이면 쳇바퀴가 멈춘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리라. 그리고 완벽한 한밤의 탈출!

나는 녀석의 멋진 탈옥을 상상하며 마치 수많은 실패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우리 민중들의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을 보는 듯 해서 경건한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이 베푸는 안락한 삶보다 위험을 무릅쓴 자신만의 자유를 선택한 녀석에게 나는 삼가 경의를 표하며 햄스터가 사라졌을 창 쪽을 향해 부동의 거수경례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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