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늘 바쁘다. 일에 바쁘고, 관계가 중시되는 집단중시 사회분위기상 모임에 빠지면 안되므로 또 바쁘며, 고생만하다 죽은 가여운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가 졸장부로 낙인이 찍혀 관직에서 파직되던 조선시대의 의식이 쉽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집안식구에 엄격한 대장부(?)로 보이기 위해 집밖으로 돌아야 하므로 또 바쁘다. 식구들을 멀리하고 집밖에서 허황된 시간을 보내느라 바쁜 것이 대장부인가?
오늘날의 대장부의 개념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예전에 경계하였듯이 오늘날에도 자신의 집안, 자신의 코앞의 이익에만 연연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졸장부이다. 사이비 대장부, 사이비 가부장과 진짜 대장부, 가부장은 구별되어야 한다. 권위만 누리며 책임은 미루기만 하는 사람은 파렴치한이다. 요즈음 처자식 거느리기 힘들다고 장가가지 않고 늙는 총각들, 손위 누나 연배 여성에 기대는 결혼 풍속도는 버리고 싶은 남성, 가부장의 버거움을 들려준다. 더불어 나누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 변화해야할 가부장의 형태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은 ‘대단히 역동적인 나라’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말할 때 ‘빨리빨리’라는 단어를 많이 기억하고, 이동속도가 빠른 인터넷, 휴대폰이 가장 많이 보급된 나라이며, 식민국에서 해방된 후 사람과 자연 그 모든 것이 피폐해진 여건, 無의 상황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기적을 만들어낸 남성들은 가부장이었다. 집 밖에서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느라 온 힘을 기울였으므로 사회는 휙휙 쾅쾅 빠르고 힘있게 변화되어 갔고 가족들과의 여유로운 시간은 생각조차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자본과 기술 그 어느 것도 없었던 시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보다는 집단적 가치가 우선했어야 했을 것이다.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는 집단적 가치를 위해 힘의 향배는 한 곳으로 몰렸고, 개인들은 참아야 했으며, 참을 수도 있었다. 일반 사람들이 외국여행도 쉽게 생각하게 되었던 시기가 언제였을까? 커다란 상점들이 들어오고 삶에 윤기가 돌던 시기부터 집 밖과 집단 우선의 가치에 변화가 있어야 했지 않았을까? 팔려고 내어놓은 사과 한 알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에게 사과를 줄 수 없었던 가난 했던 시절에 아내와 아이들은 밖에서 일하는 아빠가 밤늦게 귀가하거나 며칠 집에 올 수 없을 때 안위를 걱정하며 응원했었다. 먹고 사는 기본적 욕구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개인이 사회에 요구하는 제도와 가치는 달라진다. 국민소득 백달러 미만, 또 5000불의 생활에서의 제도와 가치가 국민소득 이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수용이 되겠는가?
가정, 정치, 경제, 군사, 교육, 사회와 문화, 모든 분야에서 국민소득 이만달러, 삼만달러 시대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반영한 가치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그에 상응하는 계획과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출산율이 낮아지고 결혼기피율이 높아진 까닭이 무엇인가? ‘아녀자’라는 단어에서 배어나오는 의미가 ‘하찮다’로 들리는 사회의 통념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모처럼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게 된 남편은 아이들 방에 놓인 낮은 책상위의 컴퓨터를 널찍한 큰 책상 위로 옮겨놓고, 평소에 기계를 모르는 필자가 여기저기 놓아 둔 전기선, 배터리, 마이크, 카메라 부품 등 잡동사니를 하나하나 꺼내어 용도에 맞게 각각의 서랍에 정리를 하고, 이방 저방 다니며 필요한 물건과 필요없는 물건들을 구분하여 깔끔하고 편리하게 해 놓았다. 사관학교 졸업 후 오랜 군생활로 다져진 정리 습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필자의 남편은 군인이며, 조종사이고, 항공공학자이다. 학교에서 보충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환해진 방을 보며 즐거워하며 몇 가지 손보고 싶었던 기계들을 내어 놓고 아버지와 의견을 나누었다. 점심상을 마주하고 앉아서도 부자간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대로마제국의 기틀을 잡아가던 초기에 로마 집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자녀의 삶에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이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버지가 뒤이어 나오는 아들을 위해 수건을 들고 섰다가 물기를 닦아주고,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버지의 이상과 삶의 방향은 아들에게 이어진다. 목욕은 함께 할 수 없을지라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은 딸에게도 중요하다.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네루는 딸 인디라에게 옥중서신을 통해 국가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반을 닦아주었다.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가 어릴 때에는 생활에 필요한 일상을 거들어주는 것과 기본생활 습관 형성, 기초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필자는 자녀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다. 교육을 전공하였고, 교육에 종사하고 있으면서도 그러하지 못하였음을 생각할 때 아이들에게 두 배로 더 미안하며, 그럼에도 심신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음에 감사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의 존재가 더 크게 다가온다. 남편도 같은 생각인지 ‘한 달에 한 번은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자’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스큐는 중국에서 자손이 아버지를 공경하며, 죽은 후에도 제사를 모셔주는 관념과 장려 정책이 인구수 증가를 가져오는 반면 장자에게만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나머지 자손은 빈털터리로 만드는 유럽의 정책이 인구의 빈곤을 초래하는 한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국가의 안위 더 나아가 흥망성쇠를 고려할 때 교육의 방향과 시각은 군사안보영역보다 더 중요하다. 최신 기술의 훌륭한 무기와 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를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다루는 사람의 기술과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기계도 무용지물이 된다. 더 중대한 것은 그 자리, 그 일에서 정신을 실종했을 때이다. 무기가 훌륭할수록 기술이 좋을수록 패망의 속도만 더 빨라질 뿐이다.
필자로부터 볼 때 할아버지 세대는 일본의 식민지국 전락과 한국동란으로 통일된 한국역사상 가장 한심한 조상이 되었으나 논팔고 밭팔며 자손을 교육하여, 자손이(아버지 세대) 황폐와 극심한 가난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으로 중진국 입성을 이룩할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아버지 세대는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하였으나 자손(현재의 우리세대)의 교육에는 실패하여 선진국으로의 입성을 위한 기본 교육과 의식을 갖추게 하지 못한 탓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할 것인가 혹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할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반복할 것인가의 기로에 10년 가까이 머물게 하였다. 갈등과 반목, 이기심이 충돌하는 사이 2세를 위한 교육은 내 가족, 내 아이의 안녕, 나 자신의 행복만을 고집하는 그야말로 깊이 얕은 소위 ‘아녀자(?)’에게 전담되었고,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방황과 황폐화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키우고 있다.
그래도 다소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선진국 입성을 위한 연착의 가능성이 보인다. 반드시 그래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아버지들이 가부장의 권위를 가지고 팔을 걷어부치고 어머니와 함께 아이들의 손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멀리 해외에 출장을 가 있을지라도 전화나 이메일 안부를 전하고, 일관계로 공휴일에도 운동약속이 있을지라도 저녁은 가족과 같이하며, 집안 행사에 딸과 아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며 집안의 역사를 들려주고 의례를 알려주며, 조상과 자신, 후손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 그리고 넓은 세상과 긴 안목을 키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의 방향과 시각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필자는 자신의 위치와 뿌리에 중심을 두고,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는 인재 양성에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구한 전통속의 장점을 살리고, 잘난 나라들의 의식과 제도, 가치를 연구하여 우리의 몸에 맞는 넓고도 큰, 새 틀을 만들어야 한다. 중심이 바로선 앞선 의식과 틀이 필요하다.
잘난 나라, 앞서 가는 나라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18세기를 살았던 몽테스큐의 글을 읽으며 왜 프랑스가 당시 세계 제일의 강국이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술과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수도원에 있는 대형도서관에는 일반인들도 열람이 가능하였고, 여성들은 살롱의 중심인이 되어 남성들과 더불어 정치, 사회, 과학, 문학, 외교 전반에 관해 토론을 하였다. 도서관에 비치한 도서목록은 웅변, 기하, 형이상학, 광활한 우주의 구조와 아주 간단한 기계에도 똑같은 관심으로 연구하는 물리학, 병과 치료법에 관한 의학서적과 해부학, 연금술, 지극히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점성술과 주변 국가들의 근대 역사서, 소설과 시 등 인간지식의 총망라이다. 현대의 국가통치체제, 의식과 가치 이 모든 것에 유럽은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강국이 된 것이다.
유럽에 풍요를 가져다 준 20세기의 양식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만들어놓은 부품을 조립하여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대량생산 방식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담당한 부품만을 만들어내면 되었으므로 다른 분야와의 협력을 통한 다양성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귀가 맞지않는 서로 다른 다양한 부품은 대량의 생산을 방해하였으므로 철저한 전문화, 고립화를 통한 이익 창출 형태였다. 이와같은 경제, 산업부문의 가치는 단순히 그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 분야의 의식과 가치가 그러한 경제구조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전문화로 일컬어지는 고립화는 상대를 알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결구도를 심화시켜 지배자와 피지배자, 풍요와 빈곤의 극한 대립을 불러왔다. 인간의 풍요를 위해 자연은 희생되었고, 한 국가를 위해 다른 국가가 희생되었으며, 이 사람을 위해 저 사람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 추구와 기계화 덕택으로 먹거리 문제의 해결, 질병의 극복과 수명 연장, 불합리한 의식과 제도의 극복은 20세기 문명의 지대한 공헌이다.
21세기는 생존을 위하여 단절에서 비롯된 황폐화의 치유를 위해 서로를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해야할 필요성이 생겼다. 다양성의 인정과 통합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내 것은 문명이고, 네 것은 야만이고, 나는 우월하고 너는 열등하고, 나는 윗분이고, 너는 아랫것이고의 이분법이 아니라 서로간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접합하여 상호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바깥양반이고 어머니는 안사람, 아이들은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닌 집안을 함께 일구어가는 소중한 동반자이며, 동식물은 마구잡이로 이용당하고 버려져야 하는 것들이 아닌 먹거리와 즐거움, 일손을 덜어주는 함께 살아야 할 고마운 존재이며, 손을 모우고 인사하는 사람, 악수를 하는 사람, 코를 비비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을 존중 받아야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의 통합으로 이루어진 새 틀은 보다 나은 개인과 국가, 인류의 발전을 위해 새롭고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21세기 한국 교육의 목표는 현지화와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
성인식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책임을 다하고 권한을 행사하는 어른이 되는 무거움과 즐거움을 알려주고자 마련된 것이다. 한국에는 계례식과 관례식의 전통이 있다. 남녀 공히 성인이 되어 오랜 세월을 이어온 가정과 국가의 맥을 이어갈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책임있는 성인으로서의 개인의 행동이 조상과 부모 더 나아가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엄중함을 의식을 통하여 꼼꼼히 알려주고 가르치면 한 공동체를 이루는 친구를 학대하고, 작은 이익을 위하여 죄를 짓는 일은 하지는 않지 않을까? 물론 의례만 부활시킨다고 되는 일은 아니지만 우대되어야 할 사회적 가치, 정상적인 사회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한 몫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자기가 제일이라고 으스대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좁은 한국땅에서만 한정시킬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잘났다고 끼와 부지런함, 노력과 포부를 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세계 여러나라에 나가있는 사람들 즉, 기업 등 민간인, 정부기관들, 군관계자와 재외 교포들이 현지의 생활과 사고로 현지인과 협력하여 최고로 발전할수 있도록 잘난 끼를 발휘하고 업적을 내도록 후원을 하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고 평가를 하면 이만불, 삼만불의 선진국 고지에 곧 다다르지 않을까? 참하고 훌륭한 지역민과 혼인하는 것도 째려볼 일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은 우리의 사고와 문화의 폭을 넓혀주고, 세계와 세계인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시간으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에 네트워크망을 형성하여 필요한 정보와 도움을 공유하면 세계인이 배우고자 성황을 이룰 모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을 거드는 동안 이리저리 흩어진 것들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며 아버지의 존재, 가장의 존재를 깊이 깨닫는다. 오랜 동안 출장을 나가있어 비어있는 시간이 많을지라도 식탁에 남편의 수저를 놓아두고, 안방에 남편의 자리를 마련해둔다는 한 아줌마의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 방이 비좁고 책은 많아 커다란 공간이 필요할지라도 크고 좋은 안방은 쓰임이 적더라도 아버지의 상징으로 놓아두어야 한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도 상기해보았다.
자신이 타던 전투용 비행기를 자신의 힘을 보태 만들어 보겠다고 개발에 골몰하느라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던 남편이 집에서 휴일을 보내며 구석구석 일을 챙기는 모습에 감격하여 몇 자 적어보았다. 필자는 사관학교시절부터 박사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였으므로 국가를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수없는 날들을 밖에서 보내는 군인정신 투철한 남편이 다소 집안을 소홀히 한다고 째려보고 있을망정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팔푼이 마나님에게 자신의 남편은 누구보다 더 크고 잘나 보이는 것이다. 다른 집의 마나님들도 그러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