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발고(勃姑)'라는 말이 있다. 비둘기의 다른 이름인데, 비둘기는 그 이름만큼이나 습성 또한 특이하다. 즉 비둘기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새로 알려져 있는데, 조류이기 때문에 유두로는 먹이지 못하고 어미의 목구멍을 통해 우윳빛 액체인 피전밀크(Pigons Milk)를 공급한다. 이 방법은 갓 태어난 새끼가 눈으로 먹이를 보지 못하는 기간에만 행해지는 것로, 새끼가 어미의 부리 안으로 머리를 깊숙이 집어넣으면 어미 새는 자신의 목구멍에 있는 젖샘에서 피전밀크를 토해내어 새끼가 마시도록 돕는다.
또 '삼지지례(三枝之禮)'라는 말도 있다. 이 역시 비둘기를 뜻하는 말이다. 즉, 세 가지 아래의 예(禮)라는 뜻으로, 비둘기는 지극히 예의가 바른 새이기 때문에 새끼 비둘기는 어미나 스승 비둘기가 앉은 나뭇가지에서 반드시 세 가지 아래에 앉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리포터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이런 비둘기의 특성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가 본받을 만한 비둘기의 훈육방식을 말하려는 것이다.
비둘기는 새끼 비둘기가 어미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사정없이 쪼아 둥지에서 몰아낸다고 한다. 이토록 엄한 규율은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여서 포란기에는 암수가 서로 협동하여 교대로 알을 품지만, 평상시에는 부부유별을 엄격히 지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컷이 앉는 자리가 따로 있고 암컷이 앉는 자리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날이 궂을 때 암컷이 꾀를 부리며 먹이 사냥을 나가지 않을 경우 수컷은 암컷을 쪼아 쫓아낸다고 한다. 이런 엄격함과 자애로움을 동시에 갖춘 새이기에 예로부터 비둘기를 교육의 표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다시 인간들의 교육 현실로 돌아가 보자. 스승의 날은 5월 15일이다. 무심히 지나치기 쉽지만 스승의 날은 그 유래가 깊다. 여러 설이 스승의 날과 관련해 회자되고 있지만, 본래 스승의 날은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기념일이었다. 1958년, 충남 강경여자고등학교 청소년 적십자(RCY)단원들은 병환 중에 계시거나 퇴임하신 옛 스승을 찾아뵙고 위문하는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사은의 활동이 이웃학교로 확대되고, 또 우수사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스승의 날의 탄생 배경이다.
하지만 요즘 스승의 날을 앞두고 안팎에서 말들이 많다. 학년말로 옮기자 거나 아니면 아예 스승의 날을 없애자고도 한다. 스승과 교육의 위상이 이미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세태이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두 교육을 질타하는 말들뿐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를 일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케케묵은 말을 들먹일 생각은 추호(秋毫)도 없다. 그저 부자유친 하듯 선생님과 제자가 친하게 지내면 족하다. 선생님은 제자를 자애와 포용으로 대하고 제자는 선생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충분하다. 혹자는 진정한 스승이 없으니 진정한 제자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과연 자기 자신은 진정한 제자의 자격을 갖추었는지 묻고 싶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찾아뵐 스승 한 분 없는 사람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끝으로 우리 교사들도 비둘기처럼 엄격함과 자애로움을 동시에 갖춘 교사가 되자는 것이다. 제자의 잘못을 서릿발같은 꾸짖음으로 바로잡는가 하면 때론 피전밀크를 게워 새끼에게 먹이는 어미 비둘기의 심정이 되어 제자를 감싸고 사랑할 때 스승과 제자간의 서먹한 벽도 홍로점설(紅爐點雪)같이 한순간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