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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계절이 마음보다 먼저 갑니다

오월입니다. 지난주에는 친정아버님의 기일이 있었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산소에 갔더니 그 때처럼 여전히 흰 찔레꽃이 무성하였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는 길에 찔레꽃은 흰옷을 입고 처연하게 피어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옷을 입고 그네 옆을 스쳐 아버지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올랐습니다. 풀은 왜 그렇게 파아랗던지요. 꽃은 또 왜 그렇게 많이 피었던지요. 이렇게 눈부신 계절에 왜 당신은 가셨는지요? 억울하고 또 억울하였습니다.

당신 나이 이제 육십을 코앞에 둔 젊디젊은 아버지를 보내는 저는 슬프기보다 억울하였습니다. 저보다 더 일찍 더 아프게 부모님을 여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별을 잃은 저는 무조건 분하고 억울하여 아버지 무덤 옆에 핀 하얀 찔레꽃만 노려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이의 환갑잔치며 칠순잔치엔 가기 싫습니다. 괜한 시샘에 제 맘속에 또 하얗게 찔레꽃이 피워 올려서 마음 한 구석을 찔러 버립니다. 하지만 봄날이 가듯 세월이 흐르면 이 가시도 무뎌지고 제 마음에 핀 꽃도 시들겠지요.

이제 강마을은 싱그러운 녹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많던 봄꽃들이 언제 떠났는지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리고 다정한 봄꽃이 떠난 자리에 이제는 농염한 모란과 보랏빛 수수꽃다리, 산기슭엔 꽃등을 켠 듯 두둥실 오동꽃이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이따금 아카시아 향기는 교실로 날아듭니다. 2층 교실에서 시를 외는 아이들 사이로 개구리 소리가 아카시아 내음새를 타고 창문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아침, 첫 수업을 하려니 기침이 계속 나옵니다. 감기를 시작한지 보름이 지난 것 같습니다. 묵은 기침은 저를 계속 괴롭히고, 간질간질 목도 편안하지 않아 수업 내내 기침을 합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딴에 걱정을 한답시고

"샘예, 몸도 아프신 데, 쉬었다가 하입시더?"
"사람은 건강이 최고라예."
“고맙지만 괜찮데이, 천천히 하모 된다.”

‘사실, 선생님 건강 핑계 대고 자기들이 놀고 싶은 것이겠지요.’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예전엔 감기도 금방금방 낫고, 많이 피곤해도 하루만 쉬면 거뜬해지는 것인데, 점점 몸에 감기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피로가 쌓인 것도 사실입니다. 학교 일이며 집안 일이 그렇게 쉬엄쉬엄 나 봐주면서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한꺼번 일이 겹치는 것입니다. 유난히 행사가 많았던 사월과 오월을 지나면서 제대로 쉬어주지 못한 것이 탈을 낸 것 같습니다.

감기 걸려 힘들어하는 저와는 반대로 강마을 아이들은 요즘 신이 났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좀 한가한데다가 남학생들은 동아리축구 대회 준비로 매일 저녁에 남아서 축구를 합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녀석들의 얼굴에서 빛이 반짝거립니다. 학부형 몇 명이 돼지고기를 사주셔서 운동이 끝나고 맛난 고기도 구워먹기도 하고요. 점심시간에도 땀을 뚝뚝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학생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밝고 건강한 아이들은 그 자체로 오월의 푸른 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싱그러운 첫여름이 저 멀리서 다가서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아직도 봄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데 마음보다 계절이 먼저 가버립니다.

일교차가 심합니다. 감기 조심하십시오. 여름향기 아련한 강마을에서 이선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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