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지역 주요 사립대학들이 2008학년도 입시 전형에서 내신 4등급까지 만점을 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정부가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내신을 둘러싼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일단 내신을 둘러싼 대학과 정부의 힘겨루기는 한 고비 넘긴 상태지만 언제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공론화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입시를 목전에 둔 수험생과 학부모들만 좌불안석이다.
교육부가 공을 들인 2008학년도 입시제도의 특징은 내신에 있다. 그 동안 대입 전형에서 내신 반영률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이는 명목상의 반영률일 따름으로 실질 반영률을 따지면 10%를 밑도는 등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교육 양극화 해소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내신산출방법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꾸는 등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교육부의 의지와는 달리 대학이 내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현실적으로 내신이 지역과 고교간의 학력차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내신 반영률을 높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 침해이자 전근대적 권력 남용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대는 교육부의 제재와는 상관없이 내신 ‘1,2등급 만점 처리’ 방안을 고수하겠다고 밝혔으며, 주요 사립대 입학처장단도 등급간 격차를 두고 실질반영률을 높일 수는 있으나 50%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매년 내신 문제를 둘러싸고 교육부와 대학이 치열하게 샅바싸움을 벌이는 것은 서로 간의 뿌리깊은 불신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편협한 시각으로 감정적인 대응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해당사자간에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면 굳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교육부는 내신을 둘러싼 비판적인 견해에도 귀를 기울이고 대학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식의 접근 방식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내신 갈등은 사실 고교 평준화로부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1974년 서울을 시작으로 고교 평준화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정부가 직접 특수목적고(자립형사립고 포함) 설립을 주도하면서 사실상 평준화의 취지는 깨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중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일반고보다는 특목고에 진학하는 경향이 자연스런 추세로 자리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고와 특목고 학생들의 내신을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이들의 학력차를 애써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교육 당국이 우수한 자질을 갖춘 특목고 학생들을 조금이라도 더 선발하기 위한 대학들 나름의 고충을 외면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이치나 다름없다. 물론 평가의 잣대를 적용함에 있어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국의 소신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현실적인 학력차를 부정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따름이다. 그래서 양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서 비교내신제를 제안한다.
비교내신제는 학력이 높은 특목고 학생들이 내신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수능이나 대학별 고사의 성적으로 내신을 산출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수 학생들이 특목고에 집중함으로써 중학교 때부터 과열 경쟁에 휘말릴 것이라는 의견이 있으나 이는 현재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우려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되면 특목고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은 일찌감치 일반고로 진학하여 내신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비교내신제가 내신 갈등을 푸는 최선책은 아니지만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차선책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