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광기어린 수학자에 대한 농밀한 해석수인의 딜레마 : 가령 체포된 공범 A, B에게 경찰이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1년, 한 사람이 자백하면 그는 바로 풀어주되 자백을 안 한 자는 10년, 둘 다 자백하면 5년형을 받는다”고 말한다 하자. 공범 A, B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A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자기만 자백하고, B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 이 경우 B는 10년형을 받겠지만 자신은 곧바로 풀려나니까. 하지만 B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라고 자백을 안 하겠는가? 그리하여 A, B 모두 자백하여 둘 다 5년형을 받게 된다. 반면 두 사람이 상대를 믿고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모두 1년형만 받는다. 이게 모두를 위해 가장 좋은 길이나, 불행히도 둘 다 자백하고 5년형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둘 다 상대방의 선택 하에서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내시의 균형이론: 게임이론의 주요 초석. 인간은 개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주위 사람이나 경쟁자가 어떤 행동이나 전략을 선택을 할지 모르는 가운데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수없이 맞고 있다. 그래서 인간사는 운동 경기와 같은 게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학문으로서의 게임이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하면서 전쟁은 물론 국내외 정치, 경제, 경영과 우리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적용돼 왔다. 이처럼 게임이론이 자리 매김을 하는 데에는 내시가 제안한 이른 바 '내시 균형'이 중요한 촉매 역할을 했다. 그는 경쟁관계에 있는 개인, 기업 , 혹은 조직들이 동시에 결정을 내려하는 경우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어떻게 자신의 선택이 상대방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역으로 상대방의 전략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감안해 게임 참여자가 결정을 내리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이 모두가 상대방이 내린 선택 하에서는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여기는 결과에 이르면 이를 '내시 균형'에 도달했다고 지칭된다.
위의 게임 이론은 20세기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존 내시의 균형 이론을 설명할 때 가장 흔한 예로 등장하는 것이다. 실비아 네이사 원작의 이 영화는 바로 이 존 내시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받은 지적 충격과 감동은 푸른 동해의 심연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상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때와 똑같았다. 그러나 신선하고 상쾌한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심한 열패감이 마구 몰려왔다. 이다지도 감동적인 영화의 생산지가 아메리카라니!
2001년도에 론 하워드가 감독했고, 러셀 크로우와 제니퍼 코넬리가 호흡을 맞춘 이 영화는 현재도 생존하고 있는 존 내시의 극적인 삶을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시나리오로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수학자로서는 드물게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시는 30년 간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며 강박관념, 불안, 초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부 버지니아 태생의 천재였던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27쪽 짜리 논문에서 기존 게임 이론을 뒤집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하면서 일약 세기의 천재로 떠오른다.

그의 나이 겨우 20살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천재성을 과신한 나머지 국가의 위기를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몽상에 빠지게 된다. 국방성의 고위 장성들 앞에서 소련의 비밀 암호를 해독하는가 하면, 윌리엄 파처라는 국가정보국원의 지령에 의해 대중매체를 이용한 소련 스파이들의 비밀 암호문을 해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존 내시. 내성적인 성격의 그를 유일하게 이해해준 친구인 찰스 허만.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이 그가 만들어낸 환영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 환영들에게 평생 시달림을 받았으며 정신 병동에까지 갇히게 된다.
그러나 정신이상자의 길을 걸었던 존 내시는 그의 제자였던 아내 앨리샤의 평생에 걸친 헌신으로 인해 프린스턴 대에서 다시 교수의 길을 걷게 되었고, 마침내 1994년 그의 균형이론으로 인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선 경쾌한 스피드로 반전이 이루어지며 존 내시의 내면세계가 환하게 밝혀진다. 그저 놀라울 따름의 스토리 전개에 기가 꺾인다. 이런 막강한 문화적 파워를 갖춘 곳이 바로 아메리카이니 말이다.
참 부러웠다. ‘존 내시의 균형이론’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를 영화라는 대중매체에서 아무런 무리 없이 부드럽게 풀어내는 그 탁월한 해석력이 너무 부러웠다. 원저자인 실비아 네이사는 경제학 석사 출신의 기자인데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무려 천 번이나 존 내시와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그 치밀한 준비에 의해 탄탄한 내용이 만들어졌고, 론 하워드의 해석력과 러셀 크로우의 빼어난 연기력이 뒷받침되어 뷰티풀 마인드가 이다지도 감동을 주는 것이다. 옥의 티라면 냉전 시대적 사고가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지적인 영화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나라의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어서 수출해야 한다. 가령 퇴계 선생과 율곡의 이기논쟁을 주제로 한 것이라든지, 정약용의 주자 해석을 둘러싼 추리 영화 같은 것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