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지금부터 수험생들은 본격적인 '입시 첩보전'을 치러야 한다. 대학별로 수능의 일부 영역 반영 또는 가중치 부여, 논술과 심층면접 등 전형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전형방법 다양화와 맞물려 수능의 총점기준 성적누가분포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일목요연한 배치기준표를 참고하기도 쉽지않다.
그러나 대학 서열화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당사자인 수험생이 시험 결과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은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일이며 정부의 행정편의적 발상이며 정보 독점에 다름아니다. 현실적으로 수험생들은 총점 석차기준으로 합격 가능성을 예측할 수 밖에 없으며, 수능 난이도도 해마다 달라져서 축적된 정보를 갖기도 어렵다.
내 점수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예측불가능한 시험제도에서는 대학교육 수요자의 학교 선택권이 보장될 수 없다. 실제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합격여부 판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으며, 합격 기준의 결정적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학 합격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라는 인식까지 팽배해 있다.
한국교총이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 4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수능 총점과 등급별 점수분포 공개와 관련해 응답자의 25%가 '다소의 혼란이 있으나 비공개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75%는 '입시제도의 정착 때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학교에서 정보 부재로 진학지도가 곤란하고 학생들은 학교를 더욱 불신하게 됨을 체감하고 있는 교사들의 의견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정부는 정책오류의 수정을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수능 총점과 누적분포 비공개의 정책효과를 당장에 판단하기 어렵다면, 수능 등급을 대폭 세분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만 하다. 현재와 같이 수험생 67만명을 9등급으로 구분하여 수만명을 같은 등급으로 하는 불합리한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나아가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춘 2005학년도 수능 개편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대학의 입시요강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더 유리해 고교 교육과정의 정상화에 역행하는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침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예비 후보들이 너나 없이 대학입학 전형제도의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 다른 제도 개선의 반복이 아닌, 진정으로 우리교육을 바로 세우고 학생들의 '공부노예'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