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기말고사 시험을 끝난 학교 운동장에는 어찌된 일인지 학생들이 보이질 않는다. 매년 이맘때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운동하는 학생들이 간혹 보이곤 했었다. 무더위 탓일까? 아니면 입시와 취업에 따른 부담감 때문일까?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 혹은 취업을 앞두고 학생들은 오로지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한다.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어도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는 학생들을 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손전화에 푹 빠져서 문자를 보내기에 바쁘다. 때론 만화책에 빠져서 독서 삼매경에 열중인 학생도 있다.
내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 관한 추억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매일 조회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정기적으로 운동장에서 실시했던 국민체조도 떠오른다. 넓은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뿐인가. 가을이면 어김 찾아오는 운동회를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도 있었다. 몇 달간 수업 중 틈틈이 연습을 하면서 준비한 곤봉체조와 매스게임도 눈에 선하다. 학교 대항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학교의 명예를 걸고 나간 선수들을 응원하는 응원단의 일원이 되어 큰 목소리로 외치던 함성도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 때의 응원은 지금의 붉은 악마 응원단 못지않은 열광적인 응원으로 기억한다. 짝짝이를 만들어서 손뼉을 치고, 큰 북소리에 맞춰서 구호를 외치던 모습도 또렷하다. 관악부의 연주에 맞춰서 힘차게 불렀던 교가도 떠오른다.
요즘은 학교 현장은 어떤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열심히 놀고 있거나 학원에서 공부에 열중하는 시간들이 더 많다. 혹 시간이 나면, 대부분 학생들은 손전화를 갖고 문자를 하거나 게임에 몰두한다. 운동장에 나가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고 또 쉽게 나서지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운동장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입시라는 중압감에 시달린 탓이리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수업 시간을 늘리지만, 정작 아이들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체육 시간은 일주일에 고작 1시간 정도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소아비만이나 고혈압, 척추이상증 등 성인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학교 교육은 지덕체(智德體)를 강조하지만 지(智)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다. 아랍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건강이 있어야 돈, 명예, 사랑이 있고, 건강이 제로가 되면 다른 것도 제로가 된다". 요즘 건강한 삶을 위한 사회적 관심이 날로 증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어쩌면 참살이(웰빙)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행복한 삶을 위한 욕구가 늘어난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욕구를 학교 현장에서 다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보면 학교 교육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체 덕 지(體德智) 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건강한 삶이 보장될 때 지식을 습득이 가능한 것이고 덕도 쌓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그 중요성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매년 새해 첫날이면 미국인들은 풋볼경기인 수퍼볼 결승전을 보러 간다. 너 나 할 것이 없이 새해 첫날부터 풋볼에 열광하는 것이다.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 풋볼을 비롯하여 야구, 농구 등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풋볼의 경우, 전략이 무궁무진해서 사관학교에서 즐겨하는 스포츠의 하나로 연구되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3군사관학교 체육대회, 연고전(고연전) 등이 정기적으로 시행되었고 텔레비전으로 중계방송까지도 하곤 했다. 미국이 이라크 공격 때 사용한 전략은 실제로 풋볼의 우회 전략을 응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부국이 된 데는 풋볼과 같은 스포츠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스포츠는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일부가 된 것이다.
스포츠는 단순히 즐기고 노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사고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페어플레이를 하지 못한다는 어느 외신을 본 적이 있다. 준법정신과 협동심 등은 스포츠를 통해 길러지는 것인데 스포츠와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잘못이다. 스포츠는 심신의 건강은 물론 조직력, 협동심, 페어플레이정신, 전략훈련, 경쟁력 향상에도 매우 긴요하다. 따라서 학교 차원에서 혹은 국가차원에서 전국민이 참여하는 과학적이고 전략적인 스포츠를 경영해야 한다. 지난 월드컵에서 목도한 바와 같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열광적인 스포츠야말로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이다.
21세기는 고도 산업사회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인 풍요와 많은 유휴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신적인 피폐, 배금주의의 만연,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야기 시키는 역기능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의 정체감을 찾지 못하는 가치관으로 인하여 정서적인 카오스(혼돈)상태가 만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21세기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청소년기에 건전한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비단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 아닌가 한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스포츠는 신체의 강건함을 추구함은 물론 협동심, 준법성 등 도덕적 사회적 가치관을 함양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한 단계 더 큰 이상을 실현하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도 한다.
최근 주 5일 근무제 시행의 확대, 그리고 경제적 여유는 국민들에게 보는 스포츠에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폭넓게 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은 어떠한가? 스포츠에 대한 인식과 가치관을 새롭게 해야 한다. 학교에서 얻은 지식이 평생토록 유용하게 사용되기 마련이다. 학교체육도 마찬가지로 졸업 후에도 자신도 모르게 학교생활 속에서 몸에 익힌 운동습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
또한 학교현장에서는 건강의 중요성을 익히 알면서도 자신의 체형이나 능력에 맞는 운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어렵다. 자유로운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학교체육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학생은 엘리트 선수로 육성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의 경우, 몸에 배인 운동 습관을 유지하여 건전한 생활체육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지도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을 컴퓨터에서 이제 운동장으로 이끌어야 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각종 운동시설을 늘리고 과학적이고 전략적인 스포츠 육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체육 지도자 활용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둘째로 학교 간 혹은 직장, 각종 사회단체 간의 스포츠 경기를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스포츠 시설을 즐기고,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도 성장산업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정규 수업 시간 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스포츠 1인 1종목을 선택해서 방과후 특별 활동 등을 통해 클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한 일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국민을 대상으로 1인 1기 시스템의 클럽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학생들의 스포츠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장기적으로는 국민 건강과 생활체육 활성화를 기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국가차원에서 스포츠를 촉진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학교현장에서는 이를 실천해야 할 때다라고 생각한다.
이제 학교의 운동장은 마음껏 학생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더불어 학생들을 컴퓨터 앞에서 혹은 학원에서 운동장으로 이끌어 내는 일이 급선무다.
학교 운동장에서 자유롭게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하나되어 축제의 운동장에서 만나보고 싶은 것이다. 어릴 적 온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였던 가을 운동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