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단축과 명예 퇴직 등으로 과거에 비해 퇴임 이후의 시간이 길어진 교원들이 크게 늘어났다. 오랜 기간을 교직에 머무르다 퇴직한 교원들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회의 우수 인력이다. 특히 평생교육이 강조되는 최근에는 이들 인력이 훌륭한 교육 공급원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능력을 사장시키지 않고 사회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지난 8월 2002학년도 초·중등 원로장학관 157명에 대한 위촉장 수여식을 가졌다. 원로장학관은 경기도교육청이 작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제도로 관내에서 정년 혹은 명예 퇴직한 교원들 중 추천과 심사를 거친 이들을 장학활동에 활용하는 것이다.
원로장학관들은 초·중·고교에서 초빙을 요청할 경우 장학지도를 담당하게 되며 도교육청은 이들이 장학지도를 나갈 때마다 정해진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하열우 장학사는 "설문조사를 실시해본 결과, 교육에 대한 경험이나 식견을 갖춘 분들이 장학활동을 펼치다보니 일선 학교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었다"면서 "강원도와 부산시에서 이 제도에 관한 문의를 해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교육부에서도 퇴임한 우수인력들을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부터 '금빛 평생교육봉사단'을 조직, 퇴직 교원들을 교육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교육개발원 평생교육센터에서는 지난 3월부터 55세 이상의 전문직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서류심사와 면접 등을 거쳐 최종 1200여명의 자원봉사자를 선발했다.
이들의 80% 가량이 전직 교사나 교장, 교감으로, 퇴직 교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선발된 봉사자들은 지난 5월 16개 시·도별로 발대식을 가지고 학생 상담, 교과나 특기·적성활동 지도 등을 펼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다 명예 퇴직한 권희덕(62) 교사는 현재 전주 신성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악 관현악을 가르치고 있다. 권 전 교사는 99년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면서 각종 강의를 준비하느라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그러나 열악한 국악교육의 현실을 본 그는 아이들에게 국악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결심했다.
"교대나 사대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다 보니 교사가 된 후에도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칠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권 전 교사는 아침 7시면 학교를 찾아 국악 관현악기 연주 지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쉬운 일만은 아니다. 말 그대로 '봉사활동'이라 평생교육센터에서 교통비 명목으로 제공받는 몇 천원이 수당의 전부. 혼자서 40여명의 아이들을 지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에 매번 도립 국악단에 있는 딸과 그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른다.
그러나 권 전 교사는 "아이들이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라며 "국악 이외에도 만화 같은 유망한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만화 그리기 등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학교 교사로 퇴직한 강영택(81) 교사는 요즘 부산시내 복지관과 모자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일주일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 강 전 교사는 "결손가정이나 저소득층 자녀 등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지만 시험을 쳐보니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며 "환경 때문에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수 학생들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가 1년 동안 새벽지도를 맡은 한 초등학생은 올해 3월 열린 수학경시대회에서 부산지역 1등, 전국 2등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강 전 교사는 퇴직 교사 인력을 적재적소에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아래 퇴직한 동료 교원들과 함께 동사무소를 통해 소년소녀 가장들을 찾아 이들을 위해 학습지도는 물론 상담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작은 지식이나마 전달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는 그는 "새로운 세계인 봉사를 통해 교사들이 활동영역을 넓히고 보람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강 전 교사는 "학부모들이 나이 많은 교사에 대한 편견만 버린다면 요즘 팽배해 있는 사교육 대신 퇴직 교원들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있지 않겠나"면서 "이렇게만 돼도 곤란을 겪고 있는 우리 교육 문제가 한가지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