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 학교라는 문턱을 밟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기는 하나 인간이 배움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자아성취를 이루어 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믿음직하게 우뚝 선 학교에서 자애스러운 선생님의 품안에서 꿈을 가지 학생들은 오늘도 자신의 부푼 희망을 가지고, 달려가는 열차마냥 쉬는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저마다 무언가를 보고 쓰고 그리고 읽곤 한다.
꿈은 무의식을 의식으로 펼쳐가는 단계
사랑은 꿈을 싣고, 꿈은 희망을 갖게 하고, 희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호연기지를 갖게 한다. 산을 찾아 산 아래서 우뚝 선 산봉우리를 쳐다보면 언제 저 산 봉우리에 올라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조금씩 조금씩 시간을 두고 오르다 보면 어느 새 산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이처럼 정상을 오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출발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달하게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길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고, 희망이 숨쉬는 곳에는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이 모여들게 된다.
아침 출근을 할 때마다 소형 승용차를 타고 몇 분 되지 않는 길을 올 때마다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시사 정보들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생활 영어 회화 방송이 나올 때도 있다. 작은 정보이지만 듣는 이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희망을 가멸차게 만들어 주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교실에서 수업 중 학생들에게 하면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학생들은 귀를 곤두세우고 들어보려고 하고 관심이 없는 학생은 그렇게 들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꿈과 희망은, 봄이면 꽃처럼 피어났다가 여름이면 작열하는 태양처럼 힘을 지지고 뭇 대상들을 성숙하게 만들고, 가을이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여 겨울이면 포근한 방안에서 추억의 장을 연상하는 심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잘 이루어지게 하려면 산소처럼 부드럽고 향기 없는 향기로 대상에게 불어넣어 주려는 따스한 마음씨가 교사의 순수한 내면에 자리잡고 있을 때 꿈과 희망은 학생들의 내면의 무의식을 더욱 부풀어 오르게 하는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꿈은 다양화되고 가능성 있는 것이어야
꿈은 그 자체에는 향기가 없다. 그러나 꿈이 실현된 상태에서는 다양한 향기를 품어낸다. 젊어서 꿈을 이루어 내면 젊음의 원대함이 강하게 풍기고, 노년에 꿈을 이루게 되면 노년의 아름다움이 은은하고 품격있게 스며 나온다. 그러기에 꿈은 민태원의 수필 “청춘”에 있어 원대한 꿈은 젊음의 삶을 살지게 하고, 청춘의 심장을 더욱 요동치게 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듯이, 꿈과 이상을 다양하게 펼쳐가는 사람은 미래의 꿈의 열차를 타고 달려가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