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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 죽성리 황학대

- 금빛 학이 나래를 펴는 곳에서 고산의 시를 읊어 보노라.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드나무 숲인가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하는 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맑고 깊은 못에 온갖 고기 뛰논다.

 위 시가는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40수 중 춘사 제4수에 해당되는 곳이다. 어부사시사는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은거하면서 지은 노래로, 춘하추동 사계절을 읊은 연장체 시조이다. 원래 ‘어부사’라는 이름이 붙은 시가는 고려 때부터 작자와 연대 미상으로 전해 오던 것이 있었다. 그런데 조선 중종 때 농암 이현보가 이를 바탕으로 장가 9장, 단가 5수의 ‘어부가’로 개작하였고, 이를 다시 고산이 40수의 ‘어부사시사’로 지었던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춘사 제4수는 전체 어부사시사 중 순수 국어의 사용과 언어의 조탁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초장은 새의 울음과 숲의 푸름을 대비시켜 시청각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고, 중장은 안개에 휩싸인 어촌의 여유로운 정경을, 그리고 종장은 연못의 물고기를 통해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후렴구이다. ‘이어라 이어라’는 노를 저어라는 의미의 여음구에 해당되고, ‘지국총 지국총’은 노 젖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다. 그리고 ‘어사와’는 노를 저으며 내는 ‘어기여차’라는 소리의 의성어라고 할 수 있다.

 후렴구 가운데에서도 ‘지국총 지국총’이라는 말의 연원이 더 재미있다. 아마 이 말은 노좆과 노의 허리에 있는 구멍이 마찰을 일으킬 때 내는 소리를 음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좆이라는 것은 나룻배 뒤 끝의 전에 조그맣게 내민 나무못을 말한다. 노의 허리에 있는 구멍을 여기에 끼워서 노를 이리저리 저으면 ‘찌그덩 찌그덩’ 하는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소리를 바로 표현할 수 없어 지국총 지국총이라는 한자어로 대체한 것이다. 참 놀라운 기지와 해학성이라 할 수 있다.

고산은 일생동안 총 20년의 유배생활과 19년의 은거 생활을 거친, 고난과 파란에 점철된 개인사를 가진 사람이었다. 혈기 방장한 성균관 유생 시절, 고산은 집권세력의 죄상을 고하는 상소문을 광해군에게 올렸다가 바로 경원으로 유배되고 말았다. 경원에서 1년을 보낸 고산은 1618년 겨울에 기장군 죽성리로 이배되었으며 이곳에서 견희요, 우휴요등 시조 6수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후 좌천과 파직을 거듭하다가 말년에는 보길도의 부용동에 은거하면서 주옥같은 시조를 남겼다. 그러나 고산이 부산의 기장군 죽성리에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고산이 무려 7년간이나 유배생활을 한 죽성리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죽성리 왜성에서 바다 쪽으로 가면 마을 중간쯤에 30여 그루의 해송이 자생하고 있는 자그마한 언덕배기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황학대’라는 곳이다. 고산은 이곳을 이태백, 도연명 등 많은 시객들이 찾아 놀던 양자강 하류의 황학루에 비교하였고, 자신의 시름을 달래는 장소로 삼았다고 한다.

 고산은 이곳에서 갈매기와 파도소리, 바다 위에 그럼처럼 떠있는 섬들을 바라보며 긴 유배생활의 아픔을 달래었다. 그는 가끔 마을 뒷산의 봉대산에 올라 약초를 캐다가 죽성 사람들을 보살피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고산을 서울에서 온 의원님이라고 부르며 경애하였다는 것이다.

  그 옛날 고산이 이곳에 유배되어 올 때만 해도 죽성리는 그림 같은 초가 몇 채와 아리따운 처녀의 허리선을 닮은 백사장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또한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이 바다와 어우러져 정겨운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부엉산이 녹의홍상의 자태를 뽐내던 곳이었다. 고산은 천리만리 낯 설은 땅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인생무상의 소회를 느꼈을 것이다. 

 


  황학대라고 했던가. 이곳은 육지와 이어져 있고 연황색의 바위가 길게 한 덩어리를 이룬 채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고산은 금빛 찬란한 학이 날기 위하여 막 나래를 펴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이곳을 황학대라고 불렀던 것이다.

 지금도 이 죽성리에 가보면 자수정처럼 투명한 바다에 고산의 감흥이 서린 황학대가 긴 그림자를 끌며 반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한가로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순박한 촌로들을 만날 수 있다. 황학대의 남쪽 암벽에는 기장 출신의 벼슬아치들이 새긴 친필 각자도 볼 수 있다. 예전에 부산에서 화가들이 찾아와 풍경화를 그릴 정도로 풍광이 뛰어났던 황학대. 그 황학대에 올라 눈을 감으면 은은한 해송의 향과 바다의 갯내음을 동시에 담고 있는 바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당국의 무관심에 의해 점차 황폐해지고 있는 황학대의 현재 모습이다. 황학대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껍데기가 다 벗겨졌고, 바다 쪽으로 돌출된 바위에는 나무를 태운 그을음이 곳곳에 묻어 있다. 뜻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라도 고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을 아끼고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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