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2024.11.16 (토)

  • 맑음동두천 10.9℃
  • 구름많음강릉 16.0℃
  • 맑음서울 14.0℃
  • 맑음대전 13.2℃
  • 맑음대구 13.6℃
  • 구름많음울산 17.4℃
  • 맑음광주 14.1℃
  • 맑음부산 19.2℃
  • 맑음고창 11.3℃
  • 맑음제주 19.9℃
  • 맑음강화 12.4℃
  • 맑음보은 11.3℃
  • 구름조금금산 7.5℃
  • 맑음강진군 15.9℃
  • 구름조금경주시 14.7℃
  • 맑음거제 17.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문화·탐방

영문으로 읽는 톨스토이 명상록

한 재미작가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매우 흥미 있고 유익한 명상록이 십여 편 원문과 함께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번역 된 내용도 매우 깊이 있는 철학과 삶의 지혜를 담고 있었지만 영문 역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어서 나의 호기심과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블로그에는 그 내용이 러시아계 미국인 Peter Sekirin 이 톨스토이 저서에서 발췌 편집 영역한 "Wise Thoughts for Every Day"에서 인용한 것이라는 주석이 붙어 있었다.

나는 즉시 인터넷 서점을 방문하여 해외주문을 했다. 열흘 쯤 지나서 책이 왔다. 빨간 표지로 산뜻하게 꾸며진 책은 385쪽 분량의 두툼한 책이었지만 포켓용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손 안에 쏙 들어오도록 아담하게 양장본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나는 곧 이 책에 매료되었다. 몇 해 전 베트남 출신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틱 낫한(Thich Nhat hanh)스님의 "Anger"를 비롯한 몇 작품에 매료되어 반복해서 읽은 후로 또 한 권의 좋은 영문 명상록을 발견한 기쁨에 즉시 번역작업에 들어갔다.

365일 하루 한 가지 주제로 펼쳐진 명상은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톨스토이가 내 십대 적에 존경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 했다. 하루하루 날짜별로 번역을 하는 동안 이 책의 번역본이 나오면 한국인 독자에게도 호평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 목적은 출판보다는 한 권을 통째로 다 번역해보고 싶은 막연한 욕심이 더 앞섰다.

하루는 대형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톨스토이 작품을 전부 검색해보았다. 혹시 번역판이 나왔나 알아보기 위해서다. 수백 권의 톨스토이 저작물 가운데 이 책은 없었다. 아직 한국엔 소개되지 않은 책으로 알고 하루 한 장, 어느 날은 하루 몇 쪽씩 시간 나는 대로 작업을 해서 내 개인서재에 저장해 나갔다. 영어 원문을 그대로 직역해 나가다 보니 문장이 어색하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했다. 일단 나중에 가필과 정정을 하기로 하고 일단 번역만 해나갔다.

그런데 한 가지 애로가 있었다. 한글 타자는 많이 익숙한데 영타는 완전히 기초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이었다. 나는 이웃하고 있는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문의해서 아르바이트 학생을 써볼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업하는 학급에 들어가 이러이러해서 영어 타이핑을 할 것이 있는데 할 수 있는 사람 혹시 없느냐고 운을 떼자마자 만면에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번쩍 든 학생이 있었는데, 지방대학에 일찌감치 수시합격을 해 놓고 요새는 거의 수업을 듣지 않고 딴 일에 열중하는 영훈(가명)이었다. 자신 있어 보이는 태도였다.



나는 반신반의 하며 그래 그럼 이따 쉬는 시간에 같이 교무실로 가자 그러고 수업을 이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영훈이를 데리고 가서 타자 실력을 점검해 보기 위해 책의 한 페이지를 쳐 보라고 했다. 나는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완전히 속사포로 한 페이지를 후딱 쳐내는 것이 아닌가. 제자의 숨은 재주를 발견해 내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을 시도 했다. 좋다 그럼. 한 페이지 당 얼마를 주겠다하고 협상을 했다. 협상은 곧 타결되었다. 영훈이는 며칠 만에 다 했다며 알려왔다. 이제 어려운 과제 하나는 해결된 셈이다.

나는 그 영문을 날짜별로 저장해놓고 수시로 컴퓨터 앞에 앉아 번역작업에 매달렸다. 낮에 계속 수업을 해야 하고 방과 후엔 일주일에 3일씩 TESOL(Teaching English to the Speakers of Other Language)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꾸준하게 번역작업을 해나갔다. 영어 자체는 용이했으나 거기에 담긴 뜻을 우리말로 표현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자전거를 타다가 빙판에 미끄러져 다리가 골절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내 생활은 일시에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학교는 장기 결근계를 내고 TESOL 교육은 삽시에 중단되어 1월중에 있는 한 달간의 호주 현지 연수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수술을 하고 정형외과에 입원한 동안에도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하여 수시로 번역을 했다. 하나하나 그 뜻을 음미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퇴원하여 가끔 통원 치료를 하면서도 꾸준히 이 작업에 몰두해 두 번 세 번 점검까지 마치고 완벽하게 번역을 마무리 해 놓았다. 이제 솔솔 한번 출판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참고로 몇 개의 예문을 들어 읽는 분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APRIL 1

Faith

It is often said or thought that it is difficult to fulfill the law of god. This is not true. God does not ask you for anything other than to love God and your neighbor, and love is not difficult but joyful.

Religious thinking develops over time. It is a mistake to suppose that past religious thinking is the same as today's. This is the same as thinking that you can fit into your baby clothes again after you've grown up.

True faith does not need great temples, golden ornaments, or music. On the contrary, true faith comes into your heart out of silence and solitude.

Faith does not consist in the things you hesitate to believe in, but in those things you are certain of.

True religion, true faith, makes us sons of God, not His slaves. To know God means to love God, to rely on Him, and to live according to His law.

믿음

신의 법을 실현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신은 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상 요구하지 않고, 사랑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다.

종교적 사고(思考)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한다. 과거의 종교적 생각이 오늘날과 똑같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마치 성장한 후에 어렸을 때 옷을 다시 입으려는 것과 같다.

진정한 믿음은 큰 사원, 금장식, 음악이 필요 없다. 반대로 침묵과 고독으로부터 당신 마음에 온다.

믿음은 믿기 망설여지는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확신할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정한 종교, 진정한 믿음은 우리를 신의 노예가 아니라 신의 아들로 만든다. 신을 안다는 것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신을 의지하는 것이고 신의 계명에 따라 사는 것이다.

위에 든 예문은 4월 1일자의 명상이다. 근래 교회의 대형화와 세속화, 성직자들의 호화생활과 십일조가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 이 몇 구절의 말은 바람직한 신앙의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20여개의 주제가 달마다 다른 내용으로 전개된다.

7월 1일자 명상에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신앙을 설파하고 있다.

JULY 1

Faith

Don't you know that the source of life is in your body? Why do you look for it elsewhere? When you do this, you are like a man who burns a lamp in daylight.






False religion tells us to deny this life for life eternal. Eternal life already exists; it is a part of this present life. -INDIAN PROVERB

When we find religion, we stop looking for individual purposes and can walk together along the path of life by understanding there is one common law, one origin, and one purpose.

Religion existed before Christianity. It began when people had their first religious aspirations and has existed ever since. Just as there is one big world ocean, there is only one true religion; but we nevertheless think true believers are only the ones who belong to our church. -THEODORE PARKER

믿음

인생의 근원이 당신 몸 안에 있다는 걸 몰랐는가? 왜 다른 데서 그것을 찾는가? 그렇게 하면 대낮에 호롱불을 켜는 사람과 같다.

그릇된 종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세상을 부정하라고 말한다. 영원한 삶은 존재한다. 그것은 현재 삶의 한 부분이다 -인도 속담

종교를 찾게 되면 개인적 목표 찾기를 멈추고 하나의 공동법칙, 하나의 근원,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인생의 길을 따라 다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종교는 기독교 이전에도 있었다. 사람들이 최초의 종교적 영감을 가졌을 때 종교는 시작되었고 그 이후 계속 존재했다. 하나의 큰 세상이라는 바다가 있듯이 단 하나의 진실 된 종교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된 신자는 우리 교회에 속한 사람들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데오도로 파커

그런가 하면 또 다음과 같이 들려주기도 한다.

JULY 18

Faith

If a person never really thinks about his faith, he will believe that the only true religion is the one he was brought up in. But what if you were born a Muslim, a Buddhist, or a Hindu? Religion does not become true just because you say yours is the only true one.

The most harmful lies are the sophisticated ones, and these are most often lies about religion.

True religion is nothing more than the moral rules and laws that we understand with our intellect and our conscience.

Your faith is established from the inside, not the outside.

Prayer as a formal religious ritual is a mistake. Our true spiritual prayer is the desire of our heart to draw closer to God and to please Him. -IMMANUEL KANT

믿음

자기 믿음을 사실 그대로 생각해보지 않으면 단 하나 참된 종교는 성장 배경이 된 종교라고 믿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회교도, 불교도, 힌두교도로 태어났다면 어떨까? 당신 종교만이 유일하게 진실 된 종교라고 말한다 해서 사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가장 해로운 거짓말은 세련된 거짓말인데 가장 흔히 종교에 대한 거짓말이다.

진실 된 종교는 지성과 양심을 가지고 우리가 이해하는 도덕적 법칙 이상이 아니다.

당신의 믿음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수립된다.

형식적인 종교행사로 행해지는 기도는 잘못이다. 진정한 영혼의 기도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한 가슴 속의 열망이다 -임마뉴엘 칸트

어김없이 요 근래의 그릇된 신앙, 기복과 기적으로 포장된 신앙, 물질에 오염된 종교를 질타하고 있지 않는가?

출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해갈 무렵 나는 몇 군데 출판사에 샘플 원고를 보내서 의사를 타진해 보았다. 그런데 세 군데 출판사에서 저작권 문제만 해결되면 출판을 고려해보겠다는 답신이 왔다.  이상하게 원서 앞뒤 어디에도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가 없다. 홈페이지 주소를 알았는데 홈페이지에도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가 없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지 난감했다. 그렇게 저작권문제로 고심하던 중 우연하게 교보문고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메인화면에 덥수룩한 수염의 톨스토이가 근엄하게 앉아있는 사진이 보이지 않는가? 자세히 보니 책 광고였다. 좀 더 그 책을 자세히 알아봤다. 이런 낭패가 있는가? 몇 개의 책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내가 번역한 책과 똑같았다. 아뿔싸! 출판 날짜를 보니까 2007년 10월 31일이었다. 나는 책을 사서 확인해보기로 하고 서둘러 주문을 했다. 맞았다. 러시어판을 번역했다고는 하지만 미국 저자와 출판사의 협조를 얻어 영어판을 번역한 게 틀림없었다. 이미 한국어판 저작권을 한 출판사가 확보하고 작업을 완료한 상태가 아닌가.

원서의 내용을 3분지 2로 줄이고 편집도 원서하고는 전혀 다르게 되어 있어서 외부로 봐서는 전혀 다른 책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혹시 영한 대역으로 출판할 방도를 해당 출판사에 문의해 봤는데 불가방침을 통보해 왔다. 아쉬웠다. 열심히 노력해서 번역을 했던 것인데. 욕심 같아선 어디 교육관련 사이트에 하루하루 연재 명상으로 소개하고 싶기도 한데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묵혀 개인 서재에 방치하자니 아까운 생각이 드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