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名銜]성명, 주소, 직업, 신분 따위를 적은 네모난 종이쪽. 흔히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신상을 알리기 위하여 건네준다.
퇴근길이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선거구에서 출마한 18대 총선 국회위원 후보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한표 부탁한다면서. 난 익히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나를 전혀 모르는듯 했다. 언제였던가? 내가 문학 관련 시상식 사회를 보았을 때 그는 내빈으로 참석을 했었다. 초대받지 않은 느닷없는 손님이여서 우리측에서는 정치인이 왜 문학단체에 얼굴을 내미느냐, 소개를 하냐 마냐 실랑이를 벌이다 식순 맨뒤에 잠깐 이름만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 그 때 그는 심하게 아는 척을 했고 찬사의 말을 잔뜩 늘어놓으며 명함을 내밀었었다. 그 뒤로도 그런 류의 장소에서 몇 번 대면한 적이 있고 명함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명함이 아직도 내 명함첩에 고이 모셔져 있는데, 그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직접도 아닌 옆의 대변인을 시켜서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누구누구입니다. 이번에 한 표 꼭 부탁드립니다.”면서... 마음이 씁쓸했다. 처음 본 사람이 아님에도 첫 대면한 사람처럼 명함을 계속해서 받아야하는 일방적인 구도에, 국회의원 후보인 그에게 나라는 대상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닌 단지 한표에 불과하다는 느낌에, 이번에도 떨어지면 다음에도 오늘처럼 처음 본다는듯 명함을 또 내밀 것이 아닌가하는 마음에 솔직히 기분이 더러웠다. 매번 만날 때마다 명함을 준다는 것은 나를 모른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이래서 정치인들은 못믿는다고 하는 모양이다. 명함을 건넬때만 친절한척 아는척 하지만 그것이 선거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악하는데 몇시간 걸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선거철이면 무수히 뿌려지고 발에 밟히는 명함 명함들... 그렇게 남발하는 명함은 소장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접고 들어가는 사실이다. 어차피 다음 선거 때면 나와서 또 뿌릴 것이기에 받는 즉시 길에다 버려도 그러려니 한다. 그것을 치워야 하는 환경미화원들은 선거 후보 명함을 ‘명함 낙엽’으로 부른다고 한다. 코팅재이기에 재활용도 되지 않을뿐더러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쓸기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하루종일 쓸고 또 쓸어도 퇴근 할 때쯤이면 낙엽처럼 또 다시 쌓이기 때문에 환경오염의 주범이란다. 누가 그랬던가? 선거철의 국회의원들, 그들이 토해내는 싸구려 명함은 쓰레기 공해고 그들이 토해내는 요란한 구호는 소음공해고 그들이 토해내는 위선적인 악수는 정서공해라고... 내 이름도 모르는 유명하신 분이 공손하게 명함을 쥐어주고 허리를 깊이 숙여 손을 잡아쥐었건만 과친절에도 마음이 와닿지 않는 것은 나만의 기분일까? 적어도 주고받는게 명함의 에티켓이라면 명함을 준비하지 않은 쪽의 이름만큼은 알아주어야 하는게 예의가 아닐까? 그런 일방적인 명함 공세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내게 원치도 않았던 첫명함이 손에 쥐어졌다. 학교에서 단체로 발급한 것이었다. 앞면에는 내 이름과 학교주소 그리고 전화번호와 메일이, 뒷면에는 좋은 선생님으로 거듭나겠다는 구호가 적혀있는... 너무도 황송했다. 명함을 만들 일도 쓸 일도 없는 일개 교사에게 이렇게 칼라명함을 만들어 지급했으니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할 판국이었지만, 왜 이런 대단하신 일(?)을 학교에서도 굳이 따라해야 하는건지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처음 보는 학부모들도 아니고, 직접 대면해서 예의바르게 주고받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뿌리는 명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학기초가 되면 담임선생님 메일주소와 전화번호가 학부모를 대상으로 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궁금하신 사항은 전화나 메일을 주시면 친절히 상담해드리겠다는 멘트가 주간교육계획 첫머리에 나간다. 더군다나 학교 홈페이지에도 교직원 소개란에 공공연히 개인 메일이 안내되어 있고, 각반 홈페이지도 활성화 되어 있어 교사와 학부모간에 대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명함을 일방적으로 지급하여 교장, 교감, 교사 것을 봉투에 넣어서 뿌리라니 참으로 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내 머리가 나쁜건지 아님 내가 시대사조를 못따라가고 있는건지... 내 첫명함을 보면서 길거리에 밟히고 찢겨 돌아다니는 선거철의 후보자의 명함이 먼저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요란하게 대한민국을 구하겠다고 공약한 국회의원의 명함이나, 좋은 선생님이 된다고 공약한 교사의 명함이나 그게 그것 같은 이 묘한 기분은? 거창한 구호가 적힌 명함을 대량 살포하면 떨어진 교사의 권위가 레벨 업 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게 요란을 떨지 않아도 묵묵히 음지에서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교육을 실천한다면 우리의 진심은 통하지 않을까? 학교도 이제는 보여주기식 선거판이 되어가는 것 같아 폼나는 내 첫명함을 보면서도 마음이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