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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몸이 불편해도 학원만은 갈래요

일요일 아침, 따스한 봄 햇살이 창문을 통과해 나에게로 왔다. 그 햇살이 너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일요일은 일상생활에 찌든 때를 그나마 벗길 수 있는 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방법은 누구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늦잠을 자는 것이었다.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데 충분한 수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오전 10시. 방문을 열자 아내와 막내 녀석 모두 외출을 한 듯 거실은 조용했다. TV를 켜자 방송사마다 장애인에 관련된 내용을 방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4월 20일,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었다. 잠시 뒤, 이 정적을 깬 것은 한통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거기 ○○이네 집이죠? 저는 ○○이 친구인데요. ○○이가 다친 것 같아요. 빨리 학교운동장으로 오세요."

순간, 깜짝 놀라 대충 옷을 갈아입고 학교운동장으로 뛰어갔다. 도착하자, 아이들은 바닥에 누워있는 막내 녀석의 팔을 만지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생긴 일에 아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모양이었다.

사실인즉, 녀석은 학원 차량을 기다리다 잠깐 시간을 내어 친구들과 축구를 한 것이었다. 며칠 전부터 시내 모든 학원들은 5월초에 있는 중간고사를 위해 주말과 휴일도 잊은 채 밤늦게까지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몸은 운동부족으로 굳어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충분한 준비운동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을 하다 넘어지면 심한 부상을 입을 수 있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 또한 공을 차다 넘어져 손을 헛짚어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녀석의 왼쪽 손이 생각보다 많이 부어 있었다. 아파하는 녀석을 차에 태워 근처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은 휴일이라 전문의는 없고 몇 명의 인턴들만 당직근무를 하고 있었다.

검사 결과, 녀석의 손목이 부러져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녀석의 부상이 심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피곤하여 지쳐있는 녀석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는데 당분간 깁스를 한 상태로 생활을 해야 할 녀석을 생각하니 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고난 뒤 의사와 수술일자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녀석은 나에게 죄송한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무엇보다 중간고사를 며칠 남겨놓고 이런 일이 생겨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기가 죽어있는 녀석을 더 이상 나무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녀석이 다쳤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소 사골을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애써 태연한척 하며 녀석의 부러진 팔에 얼음으로 찜질을 해주었다. 다소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그나마 다친 부위가 왼쪽 팔이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내와 나는 녀석이 아픈 것을 빙자하여 혹시나 어리광부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평소 자신의 몸을 함부로 대하는 녀석이 부모가 물러 준 신체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을 수 있길 바랐다. 더불어 4월20일이 무슨날인지 모르는 아이에게 '우리도 언젠가는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녀석이 깁스를 한 지 이틀이 지났다. 측은한 생각에 당분간 학원에 가지 말고 집에서 공부할 것을 주문해 보았다. 그런데 내 제안을 듣고 좋아하리라 생각했던 녀석이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녀석은 계속해서 학원에 보내 줄 것을 요구하였다.

"몸이 불편해도 학원만은 갈래요."

방과 후, 학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 다른 아이들과 경쟁에서 질 수 있다는 생각에 녀석은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하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인 막내 녀석이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원에 가야 한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껏 뛰놀아야 할 아이들이 입시경쟁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모르면서 학교자율화 계획을 추진하여 아이들의 목을 죄는 정부의 저의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피곤에 찌든 아이들의 얼굴 위로 피어나는 웃음꽃을 언제쯤 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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