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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인성이 사라진 학교, 경쟁만 남았다

며칠 전, 인근 지역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 이름도 생소한 ‘개방형 자율학교’로 개교한 지 3년째 되는 학교의 선생님들이다. 명칭에서 오는 궁금증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지 여쭤보았다. 개방형 자율학교란 말 그대로 학교장이 일반계 고교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운영하는 학교라고 한다. 대신 자율권한 범위 내에서 인성에 비중을 둔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학교 선생님들께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를 찾은 것은 다름아닌 학력신장에 대한 노하우 때문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인성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또 실천에 옮겼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이 급변했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나 학교 자율화 조치는 결국 학력 신장에 초첨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개방형 자율학교는 공교육을 혁신하고 전인교육을 지향하기 위하여 2006년 전국에서 4개교만을 최종 선정하여 시범운영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범 초기부터 최대 관건은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전인교육을 충실히 수행하고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배양함으로써 대안교육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잘만 된다면 대입학시로 인한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출범 3년째를 맞은 이 학교는 올해부터 대학입시 결과가 나타난다. 지난 2년 간은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결과는 없었기에 부담은 덜했지만 졸업생을 배출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진학 실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인성교육을 잘하더라도 입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지역사회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이 분들도 잘 알고 있다.

‘인성’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으나 인문계 고교가 ‘진학 실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부분 이상(理想)에 그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학력’과 ‘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좇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결국은 당장 눈에 보이는 ‘학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새정부의 교육 정책도 이와같은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학력에 치중하고 있는 대다수의 인문계 고교에서 인성교육은 이미 설자리를 잃은지 오래다. 학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0교시 수업이나 보충수업이 빼곡히 들어찬 상황에서 인성교육이 비좁고 들어갈 틈은 거의 없다. 그러니 죽기살기식으로 공부에만 매달리는 학생들의 이기적 성향은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동료 간의 우정이나 공동체 의식 등은 안중(眼中)에도 없다.

경쟁 논리가 교육 현장을 지배하면 인성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극심한 경쟁에 노출된 아이들은 ‘나만 잘되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의 삶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시험 때가 되면 친구들끼리 그룹 스터디를 하거나 노트를 주고받는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웃어른께 공손하라고 타일러도 눈 하나 꿈쩍 않던 아이가 점수 1점 때문에 선생님께 바락바락 따지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누가 뭐라해도 학교는 획일적인 점수 기계를 양산하는 곳이 아니라 조화로운 인간을 만드는 곳이다. 사람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들숨과 날숨이 필요하듯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학력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의 건강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균형을 잃은 들숨과 날숨으로 학교가 숨을 헐떡이고 있다. 인성을 제쳐두고 경쟁을 강요한 결과다. 학교가 인성교육을 포기한다면 그로 인한 폐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적어도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경쟁이 약(藥)이 아니라 독(毒)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녕 새 정부의 교육 라인만 모르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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